어느 날 오후 수업 감독 중에 낙엽이 멋들어진 창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깨달았다.
지금 내 일에는 데드라인이 없다는 것을
누적될 일도 없고
언제까지 해내야 하는 일도 없고
검사받을 일도 없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의 시간표를 받는다.
교사들 결원이 많은 날은
아침 8:40 출석부터 시작해서 오후 3:30 5교시까지 풀이다.
그래도 중간 11:05-11:25까지 쉬는 시간이 있어
교직원 휴게실에 가면 커피와 차가 수십 개의 머그컵에 따라져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럼 아는 직원들과 수다 떨며 차 한잔 마시고 또 두 시간 수업을 마치면
한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또 5교시를 마치면 퇴근
내가 이렇게 데드라인 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시험이든 숙제든 뭔가는 제시간에 해내야 하는 부담을 늘 안고 살았다.
5교시 종료 벨이 울리면 온전히 나로 돌아와
그 어떤 부담도 없이 발걸음 가볍게 주차장으로 향한다.
가끔은 수업시간에 버릇없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 것에 대한 찝찝함이 남긴 하지만
곧 잊으려 하면 나도 모르게 잊힌다.
그래서 내 월급엔 데드라인에 대한 값은 없다.
남편은 정식교사이고, 데드라인이 있고, 내 월급의 두 배 이상 받는다.
데드라인에 대한 값을 받고 있는 거다.
그렇다고 내 일이 적당히 시간만 때우는 그런 가치가 다소 희박한 일은 아니다
아이들과 교감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용기도 얻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배움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자주 학교에서 볼 수 있고,
둘째가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그래서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