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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Dec 13. 2023

결코 쉽지 않은 아이, 이지

이지는 9학년이다.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이지의 친구는 소피. 둘이 근처에 앉기라도 하면 그 수업 시간은 나에게 고통이다.

그래서 교사들마다 자리배치도를 만들 때 둘을 가능하면 떼어 놓는다.


이지는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는 경우가 없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쩍벌을 하고 위태롭게 앉아 있는다.

똑바로 앉으라 하면 본인은 그렇게 앉는 것이 불편해서 못 앉는다고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어느 날 치마단을 하도 많이 접어 올려 미니스커트처럼 된 교복 치마를 입고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 속옷이 다 보였다. 그래서 나는 'Can you sit more ladylike?'라고 했더니...이지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선생님은 말을 왜 그렇게 해요? 그리고 다 여자들끼리인데 제가 이렇게 앉는 게 뭐가 문제 될 게 있어요? 선생님은 왜 항상 저에게 화가 나있어요? 제가 싫어요?'

음... 일단 내가 말을 뱉어내고 바로 후회의 물결이 물려왔다.


영국에선 이제 더 이상 ladylike, man up 이런 말을 쓸 수 없다. 한국도 마찬기지일 것이다. 남자가 운다고 man up 하라고 하면 그건 상황에 따라서는 개인에 따라서는 매우 폭력적인 말이 될 수가 있다. ladylike도 마찬가지이다.


여자학교지만 흔히 통칭해서 아이들을 부를 때 'girls!'라고 부르면 편하지만 그중에는 girl의 성향보다는 boy의 성향이 강한 학생들도 있고 간혹 trans 한 학생도 있어서 사실은 girls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래서 그 대신에 반이름으로 통칭해서 '9학년 1반!'이나 'guys!'라고 부른다.


난 솔직히 이지반 수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반은 보통 서너 명의 무리가 말썽을 피우는데 이반은 오직 이지만이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내가 들어가면 이지는 '난 이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맘을 굳게 먹어버리는 것 같다.


수업시간 내내 다른 사람한테 방해되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지적하면 '왜 나한테만 뭐라 해요? 그리고 선생님은 왜 늘 나한테 화가 나있어요?'를 반복한다. 그래서 아주 무리가 되지 않으면 이지는 포기하고 내버려 둔다.


어느 날 연속해서 두 번이나 이지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첫 수업은 컴퓨팅코딩수업으로 교실이 바뀌어 컴퓨터실에 맡게 올라와있는 좌석배치도를 적용하기 어려워 일단 원하는 곳에 앉도록 했다. 단짝인 소피가 결석을 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반에서 역시 멍석만 깔아주면 얼마든지 막 나갈 수 있는 학생은 늘 몇 명 더 존재하는 터라 이날은 애나벨이 그런 경우로 이지와 애나벨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그래서 코딩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크롬북을 확인하면 아주 안 하고 있지는 않지만 몇 줄 해놓고 떠들고... 몇 줄 해 놓고 떠들기를 반복했다.


다음 수학 수업도 이지를 만날 생각에 '오늘은 금요일이고 이 시간만 견디면 되리라...'라는 마음으로 수학수업에 들어갔다. 무조건 좌석배치도에 맞게 앉도록 했고 출석 확인뒤에 노트북에 배치도를 띄우고 하나하나 확인해 들어갔다. 한 명이 걸려들었다. 당장 옮기지 않으면 바로 감점을 입력하겠다고 하니 아이들의 소음이 조금은 잦아든다. 기싸움이다. 짝꿍이 결석한 이지는 혼자 앉아서 내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Hello Ms!"

"Do you hate me?"

"Why are you ignoring me?'를 반복한다.


그래서 옆에 앉았다. 단 한 번도 그 아이와 눈을 직접 오래 마주치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오늘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대화에 실패하면 난 이 학교에 근무하는 한, 이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는 이 아이를 열외 시켜야 한다.


"이지, 왜 자꾸 안 해도 되는 말을 하지? 선생님이 왜 너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다른 아이들은 내가 지나갈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넌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는 이유가 뭐니? 난 너를 절대 싫어하지 않아. 그럴 이유가 나에게는 없어"라고 말을 하며 이지와 눈을 마주치는데 이지의 눈에서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부끄러움이 읽혔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어려운 문제 있어? 선생님이 도와줄까?이지 노트 필기 엄청 깔끔하게 잘한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엄청 잘하면서." 그렇게 말을 거니 이지가 마침 삼각법(싸인코싸인) 문제를 푸는데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변의 길이 하나를 구하면 그다음엔 코싸인룰을 적용해서 다른 변 x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바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내가 9월부터 일하면서 이지반에 여러 번 들어갔는데 처음 이 아이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나와의 대화 때문이라기 보단 그날 짝꿍이 없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오늘이지와의 눈 맞춤이 다음번 수업에서 나에게도 이지에게도 어느 정도는 나아질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았나 기대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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