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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2시간전

김밥 소동: R

직장동료 중에 영국인인데 한국에 6년 동안 살았던 R은 영국 사람답지 않게 친근하고 장난을 잘 친다. 나도 그녀에게 한국에서 6년 살았으면서 한국어도 못한다고 자주 놀려댄다. 처음 출근했을 때 꿔다논 보릿자루 같을 수 있었던 나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걸어준 사람이다.


오전 티타임 시간에 휴게소에 모이면 우린 늘 이런 대화를 한다.

R:  진, 김밥

나: 응~ 해 먹어!

R: 나한테 언제 김밥 싸줄 거야

나: 응~김밥은 엄마가 해주는 거야.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


하도 김치타령을 해서 한번 김치를 해다 줬더니,

R: 김치 정기적으로 공급해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

나: 해 먹어~

R: 어떻게 하는지 몰라

나: 유튜브에서 배워서 해 먹어~~


얼마 전에 딸아이 학년이 중학교 들어와서 첫 정기 시험을 보느라 고생했다고 지역 워터파크에 하루 소풍을 갔다. R이 보조스태프로 따라간다고 했다. 그래서 어차피 딸아이 도시락 싸는 김에 김밥을 싸기로 하고,

나: 김밥 이번에 워터파크 갈 때 싸줄게.

R: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랑해~ 진! 근데 김치도 가져와~

나: 김치 볶아서 김밥에 넣을게. 비건인 너를 감안해서 마지막에 김밥 위에 고기파우더 쫘악 뿌릴게

R: 볶은 김치 너무 좋아. 고기파우더는 안 할 거지? 난 네가 그렇게 사악한 사람이 아닌 거 알아

나: 그럼 한 가지 약속해! 내 딸 물에 빠지지 않게 늘 지켜봐 줄 거지?

R: 절대 안 하지!!!


우린 늘 이렇게 대화를 한다. 주변사람들이 아주 재미있어한다. 매우 영국적이지 않은 스타일의 대화이다. 그런 R이 9월부터 다른 학교로 이직을 한다. 방학을 앞두고 내 우편함에 그녀의 Thank you card가 하나 놓여있었다.

"진, 그동안 고마웠어. 보고 싶을 거야. 여기 더 있으면서 너한테 이것저것 더 많이 얻어먹었어야 하는데...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그 누구도 너에게 함부로 하는 일이 있게 하지 말고 그런 일이 생기면 당당히 맞서. 네가 벌써 나이가 80인데 존중받아야지!


나도 티타임이나 점심시간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며 이것저것 장난을 쳐준 그녀가 매우 그리울 것 같다.


김밥 얘기로 돌아가서, 내가 김밥을 싼다고 하니, 나의 인도인 동료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아이는 자기 친구에게 엄마가 김밥 싸는데 너 도시락 싸 오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고,  큰 아이도 자기 친구가 한국음식 좋아한다며 많이 싸달라고 해서, 난 아침 6시부터 일어나 김밥을 10줄이나 말았다.


영국에도 김밥 바람이 불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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