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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09. 2023

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며......

우울한 시험 감독

10학년(고등학교 1학년) 모의고사에 모두 1:1 감독이 배정되었다. 아침에 학교의 strong room(중요한 문서를 보관하는 사무실)에 가서 메인 매니저인 헤일리와 서브매니저인 킴에게 그날 내가 맡은 시험의 배치도와 학생정보, 시험지를 받았다. 킴이 내 시험 배치도를 보더니 25% 추가 시간 학생이라고만 하고 시험교실 세팅 자료와 문구류가 들어있는 박스를 내주었다. 교실에 도착해서 세팅을 시작했다. 일단 교실 문에 시험이니 조용히라는 사인과 핸드폰은 꺼서 가방에 넣으라는 시험 공식 인쇄지를 붙였다. 문 밖에 시험이니 조용히 하라는 입간판을 세웠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와서 학생 배치도를 보는데 학생 이름에 세 가지 형광펜이 칠해져 있는 게 아닌가... 25% 추가시간, rest break 그리고 scribe.... 학생이 필기를 할 수 없어서 학생이 답을 불러주는 대로 내가 필사를 해줘야 한다는 것 같은데 사전에 들은 바가 없어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얼른 교실문을 잠그고 스토롱룸에 갔으나 잠겨있었다. 강당에서 감독을 하고 있는 리처드를 찾아갔다.




"리처드, 여기 scribe라고 적혀 있는데 들은 바도 없고... 난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사실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H에게 물어봐 줄 수 있어?"

"너 scribe 훈련받은 사람이야? "

"아니, 전혀 아닌데... 난 이거 자신 없는데...?"

리처드는 바로 헤일리에게 전화를 했다. 리처드는 한참을 듣고 나더니 전화를 끊고,

"비극적인 상황인데 패닉 할 필요는 없어. 이 학생이 뇌종양 말기래. 시험을 보러 올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일단은 배정을 한 거야. 시험을 보러 온다고 해도 제대로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서 일부러 헤일리가 너를 배정한거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 헤일리가 너를 많이 믿나 보다. 자신감을 가져. 학생이 오면 헤일리가 시험교실로 직접 데리고 가서 너에게 더 자세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해 줄 거야."


리처드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학생의 상황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다시 내 시험교실로 복귀해서 마무리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학생은 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비가 오는 날씨에 휠체어를 타고 시험을 보러 오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나타나주길 바랐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다른 학생들과 똑 같이 시험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 근데 무리였던 것 같다. 오전 시험에도 오후 시험에도 학생은 오지 않았다. 오후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교실 천장에서 비가 새서 바닥이 흥건해져 있었다. 교실 자체도 너무 우울했다. 휠체어가 들어와야 하는 교실은 그곳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지만 한편으론 이런 교실에서 시험을 보느니 차라리 안 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본 지라 나는 큰 휴지통 하나를 받쳐 놓았다. 그리고 사무실에 와서 헤일리에게 교실천정에서 물이 새니 site manager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오늘은 하루종일 그 학생이 혹시나 와줄까 하고 기다리다 철수하고 기다리다 철수하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배정이 되었으니 시간이 되면 해당 시험지를 가지고 교실에 가서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한다. 내일도 오전, 오후 모두 그 학생이 배정되었다. 내일도 비가 하루종일 올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교실 바닥도 말끔히 말라있고, 날도 화창하고, 그 아이도 아무렇지도 않게 와서 다른 아이들과 똑 같이 시험을 봤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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