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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1. 2023

Anxiety-voices

시험 감독 보조를 한 날이 있었다. 딱히 배정된 곳은 없고 혹시 문제가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한 교실이 있으면 그때그때 투입을 해달라는 매니저의 말을 듣고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리곤 혼자서 노트북 사용, 불안증, extra timer 학생들 7명을 감독하고 있는 로레인 방에 보조로 들어갔다. 혹시 학생 중 한 명이라도 화장실을 가야 한다거나 시험을 중도에 포기하면 데리고 나가줄 사람이 필요하다. 로레인 혼자 감독을 하다 보니 한 명은 교실에 남아 있어야 해서 내가 투입이 된 거다. 7명밖에 안되다 보니 아주 작은 교실로 이 학교 유일의 3층 교실에서 시험이 이루어졌다. 다락방 같은 분위기의 교실 창밖으로 학교의 지붕라인과  교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보너스까지 주어져서 나는 좋았다. 가끔 까치와 비둘기 구경까지 할 수 있어 사방 커튼이 쳐져 있는 강당에 비하면 천국에 온 것 같았다.


로레인은 교실 앞쪽에 앉고, 나는 맨 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보통 강당에서는 서 있어야 하지만 작은 교실에 배정될 때는 앉아서 감독을 해도 된다. 학생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고 학생들 뒷모습을 보다 보니 맨 뒤에 앉은 학생이 아주 심하게 한 쪽 다리를 떠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의자와 다리의 잦은 마찰로 인해 소리가 났다. 이 학생의 불안 증상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학생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래도 그날은 무사히 시험을 마치고 나갔다.


다음날도 그 교실로 배정이 되어 들어가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학생을 직원 한 명이 데리고 들어왔다. 학생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는 동안 그 직원분은 나와 로레인에게 조용히 대화를 요청했다. 어제 누군가 이 학생 뒤에 있어서 학생이 불안해서 시험 보는 내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는 것이다. 내 얘기를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바로 자리를 앞쪽으로 옮겨서 되도록이면 그 학생에게 최대한 시선을 주지 않으려 했다.  시험이 시작된 지 20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그 학생이 계속 창밖으로 시선을 두더니 결국 책상에 엎드리고 말았다. 유심히 보고 있던 로레인이 학생에게 다가가서 괜찮냐고 말을 걸었고, 학생이 고개를 들었을 때 학생 얼굴 전체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결국 학생은 시험을 중도에 포기하고 로레인이 학생지원센터로 데리고 나갔다. 우린 다른 학생들이 모두 시험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래층에 내려가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감독이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난 것이 학생의 불안을 가중시킨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매니저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이 학생의 경우 시험 보기 전에 미리 1:1 시험을 볼 것인지 아니면 그 교실에서 여럿이 같이 볼 것인지에 대해 상담을 했고, 미리 그 교실에 와서 자리까지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정해주었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환경에 적응을 못하면 다음엔 어쩔 수 없이 1:1 교실로 배정을 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와 로레인은 점심을 먹으면서 오후 시험에 그 학생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는데, 의외로 학생은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와서 다리도 떨지 않고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나갔다. 학생 스스로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오후 시험에 나왔을지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날 일을 마치고 작은 아이랑 같이 퇴근하는 길에 불안(anxiety)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아이들이 불안증세를 겪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갑자기 작은 애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사실 이거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나도 코로나 때 많이 불안했었어. 내 안에서 안 들리던 목소리가 들렸었어. 그리고 그 목소리가 자꾸만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기 시작해서 그 목소리를 따라 시키는 대로 했던 적이 있었어. 많이 무서웠고 불안했었어."


나는 아이 말을 들으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상급학교 입학 시험공부로 인해 아이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였던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가 코로나까지 겹쳐서 스트레스는 잦은 기침으로 나타났고 심할 때는 하루종일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그래서 기침약, 마누카꿀, 각종 면역력증진약, 배와 생강 달인 물 등등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효과가 없어서 동네 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찰을 받았다. 우선 호흡기와 폐에 문제가 있는지 이것저것 검사를 해 보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개선이 되지 않아 병원에 다시 문의를 해보니 상급병원에 가서 더 자세히 진료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예약을 해주었다. 상급병원 진료일에 아이를 데리고 둘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사전에 남편이 상세하게 적어준 아이의 기침발현 시점과 우리가 시도해 본 방법들,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들에 대해 써준 메모를 읽으며 나에게 궁금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더니 아이의 기침은 불안에서 파생되는 틱 현상이라고 했다. 일시적인 것이니 아이가 기침을 해도 모른 체하고 기침에 대해 얘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멈출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병원에 다녀온 다음날 아이의 기침은 신기하게도 딱 멈췄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Ruth Ozeki의 'The Book of Form and Emptiness'도 주인공 중학생 베니(14살)가 아빠가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주변 사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많은 것을 의지했던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은 엄마는 저장강박증이 심해져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변하고 베니는 물건들이 내뱉는 목소리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학교로 되돌아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엄마와 같이 가던 도서관으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책 이야기를 아이에게 꺼내며 내 안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고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본인도 알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나를 안심시켜 줬다. 그래서 나는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꼭 이야기해 달라고 당부를 했다. 혼자서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말라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어떤 형식으로든 찾아온다. 짧게 머물다 가기도 하고, 오래 머물며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불안을 온전히 내 안에서 떨쳐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그 불안이 우리를 온전히 덮쳐버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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