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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8. 2023

월급 명세서가 우편으로

영국은 중요한 문서는 모두 우편으로 온다. 그래서 동네마다 우체통이 있다. 우체통의 모양도 여러 가지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행정실에는 등기 우편을 찍을 수 있는 기계도 있다. 편지봉투를 기계에 들이대면 드르륵하고 first class라고 찍힌다. 우체국에서 하루에 한 번 학교에 들러 우편물을 가져간다.


학교에 취업하고 나서도 학교에 자주 나가는 나에게 계약서를 직접 전달하지 않고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이름으로 얇은 우편이 하나 왔다. 이 일을 하고 달라진 것은 이제 우리 집에 내 이름으로 된 우편물이 간간히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뜯어보니 월급명세서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매달 20일경 명세서가 집으로 날아온다.


나는 학교에서 고용한 정식 시험감독관이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개념은 아니다. 내가 관둘 때까지 특별한 사고를 쳐서 학교에서 나를 쫓아내지 않는 한 계속해서 70이 넘어서도 근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곳에만 소속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학교에서 감독일을 하고 싶으면 병행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뭐 대단한 직업 같아 보이지만 최저시급을 받는다. 그렇게 최저시급을 받지만 명세서가 날아온다. 자세히 보니 시급 말고도 holiday payment(휴일 수당)가 지급되었고, 학교에서 교육연금도 부담해 준다. 그런데 사전에 휴일수당이나 연금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서 학교 출근한 날 재무부서에 찾아갔었다. 그래서 휴일수당은 뭐고 연금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시험 감독만 하면 한 달에 30만 원 정도도 벌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 월급에서 내 몫의 연금도 급여의 6% 정도 빠져나갔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영국에서 우리가 속한 주의 교육 연금이 가장 높은 연금 중에 하나라며 학교에서 내 급여의 24%를 연금으로 부담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혹시 나중에 계속 교육일에 종사할 수도 있으니 연금은 포기하지 말고 들으라고 충고해 주었다. 내가 연금을 들지 않겠다고 하면 학교 부담금은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해서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그래도 작은 적금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휴일 수당도 내 월급의 11%가 추가된다고 했다. 시급 10파운드(15000원~16000원)의 일에 휴일수당도 있고 연금도 학교에서 많이 부어주니 왠지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감독일은 지루한 일이다. 강당에서 시험이 있는 경우 두 시간 정도 꼬박 서 있어야 한다. 아무 일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 학생이 손을 들어 화장실에 간다거나 휴지를 달라고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감독관들 마다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다양하다. 헬렌은 신발에 관심이 많아서 아이들이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맨디는 왼손잡이가 몇 명인지 세어보거나 금발이 몇 명인지... 안경을 낀 학생이 몇 명인지 등등을 세어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치 식단을 궁리하며 뭘 사야 할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점점 가물가물해져 가는 중국어로 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그리고 서서 표시 많이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요가 동작들을 몰래몰래 하기도 한다. 차분하게 이것저것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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