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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pr 15. 2023

대독과 대필이 가능한 시험

1:1 방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 중에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시험 감독관이 문제를 읽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난독증이 매우 심한 경우나 기타 다른 이유로 본인이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는 것을 그대로 듣고 이해하는데 더 빠른 학생들이 이에 해당한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는데 매니저가 나를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며,

"5월 GCSE 시험에 중국어를 보는 학생 한 명이 문제를 읽어줄 사람을 찾는데 마침 네가 중국어를 하니 감독을 해주는데 문제가 없겠지?"

"문제없어, 그런데 보통화(Mandarin)지?"

"아니야, 광둥어(Cantonese)야"

"그럼 나는 못하는데... 난 보통화 밖에 못해."

"그럼 할 수 없지. 다른 사람을 알아볼게. 고마워"


매니저는 그 학생 한 명의 중국어 시험 하나만을 위해 외부에서 중국어(광둥어)가 가능한 사람을 여기저기 알아봐야 한다. 그런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감에 그날 아침 나를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었던지.... 괜히 미안해졌다.


이런 학생의 경우 exam office에 와서 상담을 요청하면 매니저가 먼저 상담을 진행한다. 학교에 배치하고 있는 펜리더기 사용을 원하는지 아니면 감독관이 읽어주길 원하는지를 물어본다. 펜리더기 사용을 원하면 미리 매니저가 그 학생에게 시연을 보여주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시험당일에 세팅을 해준다. 펜 리더기 없이 감독관이 시험 문제를 읽어주길 원하면 전직 교사였던 차분한 맨디에게 배정된다.


아주 드물게는 감독관이 필사를 해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손가락을 다쳤거나, 관절염, 통합운동장애, 시력장애등이 있는 학생의 경우 학생이 답을 말해주면 감독관이 시험지에 답을 필사하게 된다.



처음엔 학생이 어떤 애로사항이 있든 시험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학교의 시험 환경이 매우 강한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독방에서 시험 보지 않으면...(독방 같은 소리 하네)

색지에 인쇄하지 않으면...(유치원도 아니고)

중간중간 쉬면서 하지 않으면...(시험이 장난인 줄 아나...)

글씨를 알아보게 쓸 수 없으면...(그런 사람이 무슨 시험 볼 자격이 있다고...)

누군가 대신 써주거나 읽어주지 않으면...(시험을 날로 드시려나...)라고 흔히들 생각할 수 있다.


제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약자들을 배려하는 제도 마련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매우 바람직해 보였다. 이제 이런 학생들의 사정에 대해 충분히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이해하고 나니, 감독할 때 내 마음가짐 자체도 달라졌다. 측은지심이 작동하며 가능한 학생이 편안한 환경에서 시험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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