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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16. 2023

색종이 시험지

처음 시험감독을 하는 날 학생들에게 배포되는 시험지 인쇄종이가 색이 여러 가지인 것이 궁금해서 주임 감독관에게 물어보았다. 학생 이름에 각각 다른 형광펜 색깔로 칠해진 전체 배치도를 보여주며, 지정된 색지에 인쇄하지 않으면 시험지를 읽는데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미리 파악하여 학생들에게 맞는 색지에 시험지를 인쇄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색지 종류가 열개도 넘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여분의 빈종이도 그 색에 맞게 준비해 놓는다. 보통 강당에서 시험 볼 때 색지에 인쇄된 시험지는 약 10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가끔 남편이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수업자료를 준비할 때 어떤 학생들은 색지에 따로 복사해서 줘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글씨가 크지 않으면 읽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벽에 걸어놓는 달력 크기만 한 종이에 따로 준비해 줄 때도 있다고 했다.


시험 감독관을 하거나 커버 수업을 할 때 공강 시간이 생기면 사무실 일을 돕는다. 시험감독관 서브 매니저인 킴을 따라 복사실에 간 적이 있다. 복사실 안에는 각종 색지가 박스별로 선반 위에 놓여있었다.

인쇄 가능한 색지 종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데, 사회에 나가서도 흰색 종이에 인쇄된 것은 못 읽으니 색지에 인쇄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 통할 것 같냐고. 하지만 만약 내 아이가 그런 이유로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학교에서는 최대한 학생들이 평등한 환경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여기서 평등함은 모두 같은 조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력이나 눈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도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문제없이 시험을 볼 수 있게 조건을 맞춰주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일들이 컴퓨터로 처리되고, 모니터 바탕색도 조정할 수 있어서 사회에 나가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시험 볼 때 학생 입장에서 최대한 배려를 해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국에 와서 사는 4년 넘는 기간 동안 영국의 안 좋은 점이 더 두드러지게 보였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그랬던 것 같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영국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그동안 몰랐거나 지나쳤던 영국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영국에서의 생활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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