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긴 노동이 좋아

by 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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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 안에는 이미 후르츠펀치용 플라스틱 컵들이 쭉 놓여 있었어. 후르츠펀치는 과일에 사이다를 넣은 후식 음료 같은 거고 일본에서 아이들 간식으로 많이 만들어 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급식에도 나오더라. 물론 후르츠는 생과일은 아니고 통조림이지. ㅋㅋㅋ 직원들이 벌써 감귤, 사과, 복숭아, 체리가 들어 있는 커다란 업소용 통조림 수십 개를 따서 건더기와 국물을 분리해 놨어. 각각 과일이 담긴 볼을 나눠 들고 정해진 양을 플라스틱 컵에 스푼으로 넣어주는데, 니시가타상은 복숭아만 쫘르륵 넣고, 나는 반대편에서 감귤 두 개 반 씩을 투하했지. 다른 과일까지 모두 넣어주고, 미리 만들어 식혀 둔 시럽을 과일 위에 부어주니 작업이 끝났어. 온통 스텐으로 둘러싸인 급식실에 460개의 알록달록한 후르츠 펀치를 보니까 곧 스텐딩 파티라도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작업이 끝난 후르츠 펀치 전체에 커다란 랩을 덮어주고는 바로 참치토스트 만드는 일에 투입됐어. 엄청난 양의 식빵이 들어있는 봉투를 보니까 와~ 이거 장난 아니다 싶었지. 급식 빵 재밌는 게 저학년 중간 학년 고학년의 빵 두께가 다 다르다는 거야. 1, 2학년은 50g 3, 4학년은 60g 5, 6학년은 70g. 빵만 그런 게 아니라 생선이나 고기도 마찬가지인데, 빵처럼 저중고까진 아니고 저학년 고학년 정도 나눠서 배식한다 하더라고. 아이들의 양에 맞춰서 그람수를 다르게 계산하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1학년 애들 보면 진짜 애기 같잖아. 6학년 애들은 또 얼핏 선생님으로 보이는 애들도 있고... 그러니 그람 수 다른 거 납득 가지. 일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헷갈리고 복잡해서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토스트, 그라탕, 하나하나 모양 잡아줘야 하는 함박스테이크나 경단 같은 메뉴일 때는 직원 알바 할것 없이 모든 인원이 총동원돼서 짧은 시간에 후다닥 일을 끝내지 않으면 시간이 모자라더라고. 만만치 않은 오늘의 참치 토스트. 긴장 속에 작업은 시작되고... 한 명이 식빵의 가장자리 네 군데를 물에 살짝 적셔 재빠르게 건네면(오븐에 구웠을 때 가장자리만 딱딱해져서 그런 것임), 다른 한 명이 트레이 하나 당 20개씩 올려놓는 게 1단계. 다음은 참치랑 야채, 마요네즈 등을 섞어 만든 소스를 빵에 펴서 바르는 2단계 과정인데, 이게 기름기 쫙 빠진 참치가 들어가서 그런가 뻑뻑해서 빵에 잘 안 발리는 거야. 너무 세게 발라주면 부드러운 식빵에 구멍이라도 날 것 같고 말이지. 양 손에 버터나이프를 든 니시가타상은 노련하게 쓱쓱 바르면서 ‘소스가 안 뭍은 쪽은 애들이 잘 안 먹어요. 구석까지 잘 발라 주세요.’라고 하더라. 그 얘기 듣고 정말 구석구석 열심히 펴줬다고. 똑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려니까 허리가 아프긴 했지만, 시간은 참 잘 가더라. 무슨 일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어리벙벙 서 있는 것보다 이렇게 단순 작업을 오래 하고 있으면 맘은 편하겠다 했어.


그 어느 때 보다 심플하게 일하고 참치 토스트랑 후르츠 펀치까지 맛있게 먹고, 슬슬 설거지랑 정리를 하러 다시 급식 정리실로 들어갔어. 다 사용하고 난 과일 통조림 통이 3-40개 정도 쌓여있더라고. 이것들을 정리하는 방법은 통조림 따개로 위아래 뚜껑을 다 따고, 가운데 원통은 발로 밟아서 납작하게 만들어 찢어지지 않는 비닐에 담아 버리는 거래. 치프가 누가 할 건지 묻길래, 이 심플한 일은 내가 하겠다고 했지. 옛날에 엄마가 복숭아 통조림 따주면 내가 하겠다고 고집부렸던 생각도 나고 말이야. 정말 오랜만에 통조림 따개의 칼날을 뚜껑에 꽂고 바깥으로 손잡이를 꾹꾹 누르며 돌려 따기 시작했어. 허세 좋게 시작했는데 이 업소용 통조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 단단한 녀석이었어. ㅠㅠ 30개 넘어갈 때쯤에는 팔 근육에 감각이 없어지고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지면서 잠시 어질어질... 아오, 심플하게 실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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