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명랑소녀 기쿠치상이 갑자기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 거야. 아니 2주도 안 남은 상태에서 인사이동을 통보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이 학교에서 일 년 정도 일했다는데, 다들 섭섭해서 한 마디씩 하면서도 서브 치프로 승진돼서 이동하는 거라 축하할 일이라고... 그래도 난 너무 아쉽더라고. 처음이라 이것저것 서투른 나한테 편하게 말도 시켜주고 알고 보니 가까운 동네라서 은근히 친한 기분도 들고 그랬었어. 처음에 왔을 때 생각난다. 나한테 어디 사냐고 물어보길래 카메아리 산다고 했더니, 캬~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는 바로 다음 역 카나마치에 산다는 거야. 약간 오버하는 것도 되게 귀여웠어. 왜 카메아리랑 카나마치 사이에 강이 있고, 아리오라는 쇼핑몰 하나 있잖아.
“카메아리에 아리오 있죠? 거기 저 자주 가요. 달리는 거 좋아해서 아리오 옆 강변 조깅코스에 달리기 하러 가는데...”
“어머 저도 장볼때 무조건 아리오에요. 강에는 가족끼리 산책 자주 가고요.”
한 동네 아니랄까 봐 행동반경이 딱 겹쳐서 막 웃었잖아. ㅋㅋㅋ 마주치면 부끄러울 것 같다고 서로 모른 척하자고 하면서 또 꺄르르 웃고.
한 번은 숟가락이랑 포크를 치프랑 기쿠치상 나 이렇게 셋이 닦고 있었는데, 기쿠치상이 그러는 거야.
“어제 저녁 8시쯤 느지막이 살 게 있어서 아리오에 갔었거든요. 9시면 곧 문 닫을 시간이라 서둘러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남자애가 바로 따라서 타는 거예요...”
뭐지 뭐지? 난 조금 무서운 상황을 상상하게 되더라고. 거기 저녁때면 불량한 동네 애들 가끔 보이거든. 암튼 다음을 막 재촉했지.
“그 남자애가 ‘저기... 지금 뭐 떨어뜨리셨는데요?’ 그러길래 제가 두리번거리면서 ‘어? 뭐요?’ 했더니 ‘저의 마음이요. 첫눈에 반했습니다.’”
“꺄~~~~~”
그 얘기 듣고 치프랑 셋이서 숟가락이랑 포크를 잡고 급식실 떠나가듯이 웃었다니까. 막내 동생같이 애교쟁이에다가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해서 급식실 사람들이 진짜 이뻐했는데... 생각할수록 아쉽지 뭐. 기쿠치상 말고는 조근조근 재밌게 말하는 사람도 없고, 이제 급식실은 한동안 쌩 하지 싶어.
기쿠치상이 다른 학교로 가고 나서 본사에서 경력 있는 헬퍼가 2명이나 왔는데, 그동안 손발 척척 맞던 상주직원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지. 베테랑 알바 선배들도 너무 힘들어하더라고. 경력이 있다고는 해도 급식실마다 환경이 다 다르고 룰도 다르니까 말이야. 조리도구, 식기, 세제 할 것 없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일일이 찾아주고, 시간 시간 해야 할 일들도 설명하고 휴... 이렇게 맞춰 가는 거야 당연하지만, 두달 후에 새로운 직원이 오면 헬퍼들과도 사요나라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붇는 느낌이겠지 뭐. 그래도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 아니겠냐는 니시가타상(책에서만 본 일본 속담, 리얼 일본어ㅋ). 치프 경력이 있는 분은 조리를 맡아서 하고, 나머지 한 분은 일주일 분 우유 빨대를 학급 명수만큼 비닐에 넣는 일이나, 배식할 때 누군가 지시하는 대로 그때그때 보조역할을 했어. 이건 사실 내 포지션이잖아. 얼떨결에 선배가 되어 일본어로 설명해야 할 때가 있어서 나는 나대로 진땀 빼고.ㅋㅋㅋ 생선 튀김, 샐러드에 드레싱 별도, 야채수프, 밥, 밥에 뿌려먹는 후리카케까지 메뉴도 왜냥 복잡한지. 메뉴가 많으니 배식용 식관도 많고, 배식은 겨우겨우 헥헥... 암튼 기쿠치상의 빈자리가 크다 커.
오전에 이미 끝냈어야 하는 정리들이 남아있어서 그거 하느라 한 시간이나 지나서 점심을 먹게 된 거야.
힘들어서 밥맛도 별로 없고, 메뉴에 있던 후리카케를 밥에 뿌렸는데, 후리카케에 유카리가 들어있었어. (유카리는 붉은 자소, 우매보시의 붉은색을 낼 때 쓰이는 특유의 향이 있는 잎채소) 내가 이 학교에 출근한 첫날, “저 오늘 이거 가져왔어요! 밥맛 없을 때 뿌려 먹으려고.”라며 시판용 유카리 후리카케를 사각사각 흔들어 보였던 기쿠치상이 떠오르더라.
아... 아무래도 기쿠치상 동네에서 마주치면 아는 척해야겠어.
2020.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