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정신없이 오느라 메뉴 공유를 못하고 바로 급식실로 들어왔었어. 영양사 선생님이랑 하는 아침 조회에서 메뉴가 카레라는 걸 알았지. 오~ 드디어 카레의 날이 왔구나! 안그래도 우리 애한테 급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면 고민 없이 카레가 젤 맛있어!라고 말하거든. 급식 맨날 남긴다고 걱정하는 학교 엄마들 몇 명 있는데, 카레인 날 만큼은 싹싹 먹고 온다더라고. 일본에서 1학년 애들 급식 적응시키느라 입학 첫 급식 메뉴를 카레로 하는 학교도 많잖아. 아게빵, 소프트면과 함께 급식 3대 인기 메뉴가 카레. 도데체! 얼마나 맛있길래...엄마들 참 궁굼할거야. 그치? 이게 또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급식알바만의 특권 아니겠어? 오늘 먹어보고 동네 엄마들한테 ‘와~ 내가 진짜, 애들이 왜 카레카레 하는 줄 알겠더라니까!’ 요런 자랑질? 이나 하는 장면떠올리며 혼자 큭큭. 암튼 오늘 급식 카레 제대로 평가해 주마!
탁탁탁탁 보통 때보다도 조바심이 들어간 칼질 소리가 나는데, 카레에 들어갈 야채에다가 사라다에 들어갈 야채까지 썰어재끼느라 불 뿜고 있더라고. 베테랑 직원들이 아침 새벽부터 작업했을 텐데 아직 썰고 있구나. ㅜㅜ 하긴 460인분 다듬고 씻고 썰고 엄청난 양이기는 하지. 오늘 나같은 신입이 엉성하게 껴서 썰면 절대 시간 못맞출 것 같아. 직원들은 다 미혼에다 20-30대인데, 이렇게 학교에서 460명분 음식을 단숨에 만들다가 집에 가서 1인분 만들면 장난하는 거 같겠어. ㅋ
카레 조리 과정에서 뭔가 맛의 비결이라도 있나 궁금하긴 하더라고. 일하면서 유심히 봤는데, 한쪽 가마에 양파를 캐러멜 색이 나도록 한참을 볶아. 양파 오래 볶아서 깊은 맛 내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선 시간도 촉박할텐데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음... 요거는 인정. 바로 옆 가마에서도 뭔가를 막 볶아대기 시작하는데, 코끗이 찡긋하는 게 이거슨 인도 카레집에서나 나는 향신료 냄새? 우우우우왓! 강황, 코리안다, 가람마살라, 구민 같은 향신료를 하나하나 조합해서 1부터 카레 루를 만들고 있는 장면 목격! 애들이 급식 카레를 좋아하는 걸 보면 학교에서도 당연히 시판용 고형 카레나 가루로 된 거 쓸 줄 알았어. 카레 가루 넣으면 익숙한 맛이 날 테니 집이나 학교나 똑같이 잘 먹는 건가보다 하고. 요즘 내가 남인도 카레에 푹 빠져서 동네 엄마들이랑 카레 모임을 할 정도로 카레 마니아 (내맘대로)지만, 집에서는 무조건 실패 없는 맛, 바몬드 카레를 쓴다고. 어떻게 급식실에서 향신료로 카레를 만들 수가 있냐 말이야. 애들 입맛에 맞나? 어릴 때부터 향신료에 익숙해져야 커서도 거부감이 없다고 하잖아. 나도 향신료가 처음엔 익숙하진 않아서 맛있다고 느끼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그런 교육인 건가? 도대체 저 카레 어떤 맛일까?
궁금증은 폭발 직전이었으나... ‘디저트 쪽 일 부탁합니다.’ 니시가타상의 한 마디에 즉시 디저트 작업에 투입 되었지. 이요캉이라는 귤 종류인데 크기가 큰 게 한라봉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뭐 전에 사과나, 배, 포도 여러번 했어서 어려운 건 없고. 이요캉 하나에 6분의 1로 컷팅해서 한명에 한 개 씩 배식되는 거야. 일단 한 명이 꼭지 부분이랑 아래 껍질을 자르고 그걸 또 반으로 잘라서 가운데 심도 깨끗하게 제거한 후 넘겨줘. 반쪽짜리 이요캉을 삼등분해서 애들이 벗겨 먹기 편하게 칼집 내주는 일은 내 담당. 이제 반 별 인원수대로 트레이에 넣어 배식 전까지 냉장보관해주면 요 작업도 끝이야. 오늘 카레 먹고 상큼하게 이요캉 딱이겠다.
염원하던 카레라이스와 바삭바삭 유부 사라다, 이요캉이 내 앞에 준비 되어 있었어. 일단 카레부터 한 입 떠 먹었는데 푸하하... 이런 반전이... 이거 저학년 애들은 못먹을텐데? 할 정도로 매웠어. 그리고 하나하나 스파이스가 살아있어서 얼얼, 알알한 맛이었다고. 절대 시판용 카레가루의 밋밋한 맛이 아니야. 치프한테 좀 매운데 애들 잘 먹냐고 물어봤는데, 거의 남김 없이 먹어서 잔반율이 제일 낮대. 헐.
이요캉으로 알알한 입안을 마무리 하면서 왜 애들이 카레카레 하는지 동네 엄마들에게 자랑 못하겠다 싶었지만, 내 입맛에는 딱이었어.
스파이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