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노동의 맛

by 임소요

둘째 날은 매니저도 없고 나 홀로 출근이야. 출근시간대라 만인 전철 타고 꽉 끼어서 학교까지 갔지 뭐. 첫 출근의 핀치를 생각하며 일단 숨 고르고, 어제 본 그대로 초인종 누르고 나서 급식실입니다! 하고 말하니까 문이 열렸어. 앗싸! 하나하나 클리어하는 느낌으로 실내화->슬리퍼 순서로 갈아 신고, 오하요고자이마스!라고 인사하면서 다다미방에 들어갔는데 어머! 이미 나 빼고 다 와 있는 거야. 누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니지만 30분 전에 와서 그날의 메뉴, 알레르기 학생 대응 같은 거 미리 공유하고 전날 세탁물도 정리하고 그런대. 자기들은 다 근처에 살아서 그런 거니 전철 타고 오는 사람은 자기 상황에 맞춰서 오면 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더라고. 그래도 신입 알바가 젤 늦는 건 좀 그렇잖아. 내일부터 30분 일찍 와야 되겠구나 요 분위기 바로 접수.


위생복 갈아입고 마스크도 쓰고 테이프 클리너로 온몸을 쓰윽 쓰윽 밀어준 다음에 급식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훅 들어오는 열기에 숨이 턱 막혀. 당연한 게 펄펄 끓는 가마 열기에다 수증기 때문에 습도까지 높으니 불지옥이 따로 없는 거지. 조리 중엔 주변 온도가 40도 가까이 된다는데, 냉방시설이라곤 커다란 선풍기랑 문 열어놓는 게 다라니까. 그나마 방충망이 파손되거나 했을 때는 창문도 열면 안 된대. 벌레 들어온다고. 뜨거운 가마 앞에서 조리해야 되는 직원들은 정말 힘들겠더라. 내가 누굴 걱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직원들은 몇 시에 오냐고 물어봤더니 헐, 6시 반 출근이래. 새벽 일찍 같이 와서 9시 알바들 올 때까지 다시 국물 내고, 재료 손질 같은 밑 작업하고, 쭉~ 불지옥에서 일하다가 알바가 2시 반에 퇴근한 후에 정리까지 하는 거야. 이걸 직업으로 하려면 도대체 체력이 어느 정도여야 되는 건지… 그나마 늦게 와서 일찍 가는 알바라 다행이라 해야 되나?


일하는 동안 치프(조리 담당 리더)가 몇 번이고 수분 보충하세요! 쉬면서 하세요! 그러더라. 직원들이 더운 데서 일하다 쓰러지고 그러니까 본사에서 내려온 지침이래. 당장 일이 바쁘니까 물은 나중에 마셔야지 하거나, 나처럼 처음이라 잘 모르고 눈치 보여서 참으면 안 되니까, 의도적으로 계속 권유하는 거지. 적당한 타이밍에 에어컨 빵빵한 다다미방에서 잠깐 열 좀 식혀주고 각자 보온병에 가져온 물 마시고, 그러고 나서 불지옥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ㅠ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네댓 번 했나? 면접 때 체력 좋으냐, 옛날에 운동 같은 거 안 했냐 집요하게 물어보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네.


드디어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옷 갈아입는데, 속옷이며 티셔츠며 머리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서 꼴이 정말 말이 아닌 거야. 전철도 타야 되는데 땀 냄새 푹푹 나서 어쩌냐고. 한 여름에 이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허망하게 느껴지다가 갑자기 또 웃음이 나네. 더위 먹었나? ㅋㅋ 이 정도로 땀 흘리고, 이 정도로 빡센 노동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일했다!'라는 느낌이 온몸으로 찐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어. 내 인생에서 이런 자극적인 경험도 없다는 생각에 재밌더라고. 그리고 땀에 젖은 옷에 닿는 바람도 너무 시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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