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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Jan 11. 2023

독감 해방일지 Ⅱ

독감은 네가 걸렸는데 잠은 왜 내가 못 자?


아이코로나를 피해 간 것은 건강체질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엄마, 나는 도대체 독감에 왜 걸린 걸까?”

준비도 없이 격리하게 된 본인 처지가 

억울하기라도 한 듯 서럽게 물었다.

“네가 평소에 편식하는 것만 봐도 모르겠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해진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거기다가 규칙적인 생활도 하지 않고, 운동도 귀찮아하는데

독감 바이러스가 올만한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하지 않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글쎄 말이야.”라는 다섯 글자로 애써 함축했다.




주변에선 아이들 밥 해주기 귀찮을 때는 냉털(일명 냉장고 털기)로 이것저것 다 섞어 내어 주는

볶음밥이 영양과 간편함 둘 다 챙기는 최고의 메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허나 이 아이 알 수 없는 것들(어쩌면 알고 있는 것들)이 한데 뒤섞여있는 볶음밥을 까무러치도록 경멸했다.


한 그릇 음식이 나오는 수요일 급식 날이면 모든 건더기를 걷어내고 흰쌀밥만 받아먹는 아이.

그마저도 애매한 날은 (이를테면 이미 다 섞여 분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콩나물밥 혹은 오곡영양밥 같은 것들 말이다.)

아픈 학생들을 위해 항시 구비되어 있는 흰 죽을 받아먹는 요상한  아이가 바로 내 새끼다.


라떼부터 자고로 수요일 급식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그런 날이 아니었던가? 4교시부터는 조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엉덩이를 들썩이며 마음만은 이미 급식소로 달리고 있는 그런 날이었단 말이다.




밤이 되면 고열이 펄펄 끓으며 해열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독한 녀석이기에 해열제 공격까지 씹어먹는 건지 지레 겁이 났다.


자다가 뒤척이면 열이 더 올라 힘들어하나 걱정, 잠자코 누워 있으면 힘이 없어 축 늘어지는 건가 걱정, 뭘 해도 걱정이다.


이렇게 며칠이 지속되면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내가 걱정스러운 지경이 온다.

어느 순간 분명히 눈을 뜨고는 있는데 깨있는 건지, 자는 건지 약간은 헷갈린 반수면 상태가 오는데 그럴 때면 30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췄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었을 때 다그치기 위함이면서, 잠깐이라도 꾸벅거리며 쪽잠이라도 청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아이의 죽도 물도 끓이고 있노라면 내 속도 부글거리며 타들어갔다.

 

출처 pixabay


아이를 키우면서 참 많이도 겪게 되는 일이지만

영 적응 되지 않는다. 그렇게 10년이 넘은 경력직  초보엄마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설령 40도 라도 열은 수치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38도 열이라도 어떤 아이는 계속 쳐지며, 39도 열인데 아이가 잘 놀고 잘 먹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 (생략)
 미온수로 수건에 적셔 아이 몸 씻기기, 이마에 수건 올리기(열패치) 등은 연구결과적으로는 해열제만 먹었을 때와 별차이가 없다.
아이 팬티만 입히고 수건으로 닦는 테피드 마사지는 아이가 싫어하며 오한을 일으킬 수 있다.   …(생략)

아이의 열 원인을 소아과 진료를 통해 찾고 아이가 탈수가 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출처 : 우리 동네어린이병원, 우리 어린이


아이가 고열이 나기 시작하면 체온이 1도를 오르내릴 때마다 일희일비를 경험했다.


여태껏 열이 날 때면 미지근한 수건으로 목덜미, 겨드랑이를 밤새 닦아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열날 때마다 해열제와 세트처럼 구비했던

열패치도 크게 효과가 없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뭐라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에 아이를 성가시게 했었는데, 이것들이 큰 효과가 없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며 아이 스스로 앓을 만큼 앓아야 지나갈 일이지만 아이가 아플 때면 이런 관대한 마음을 갖기 어려운 게 부모 마음이랄까.

핼쑥해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엄마가 대신 아파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의 따뜻하고 얇은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엄마, 나한테 감기 절대 옮지 마"

수액을 거부할 때처럼 단호했다. 본인이 아픈 걸 경험해 보더니 엄마가 아픈 건 싫었던 걸까?

아니면 장난 삼아 “엄마가 아프면 그땐 네가 엄마 간호해 줄 거야?”

라는 말이 부담이 돼서 그런 건 아니겠지? 짜식.
어쨌거나 아이의 그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일렁이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엄마란 작자는 본인이 독감에 걸려도 걸린 거고 자식이 독감에 걸려도 내가 걸린 거나 다름없다.
같이 아프고, 환자식을 먹고, 밤을 새우기 일쑤다. 화장실 딸린 방에서 나와는 성씨도 다른 작은 인간과의 자발적인 격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식 말고 남편이 걸리면 그 중간 어디쯤, 그래 '잠복기' 정도로 해두자.)



아이의 독감 격리 해제 기념으로 배달의 민족 앱을 (또) 켜고 스크롤바를 씽씽 내리며 눈이 반짝인다.

아이가 회복되어서 인지, 매운 닭발에 시원한 맥주 한 잔 먹을 생각 때문인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사르르 번졌다.

하루종일 이불빨래로 돌아가는 건조기 소리조차 아름다운 선율로 귀에 꽂혀내리는 아름다운 밤.


.

.

.

아, 이런 행복한 타이밍에 목이 칼칼해져 오는 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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