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사들은 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을까?

난 문제아가 교사가 되길 바란다.

by 임상택

2020년 정도였을 것 같다. 전체 교직원 연수에서 한 외부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선생님들께서 이해하고 지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임용시험을 통과하신 분들이시지요? 학창시절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신 분들이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학창시절 다들 모범생이셔서 문제 학생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때 난 "아닌데용?" 하고 철부지 어른아이처럼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 과거가 부끄럽기도 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난 동네의 망나니였다. 망나니,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그게 딱 어울렸다.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다녔다. 동네에 지나가다가 나보다 어리지만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아이를 보면 째려 보았다. 내 눈을 피하지 않거나 기분 나쁘게 날 내려다 보면, "뭘 꼬라보냐?" 하면서 얼굴에 죽빵을 갈겼다. 한 대 맞고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때렸다.


동네에서 같이 어울려 축구를 하다가도 기분 나쁘면 무릎으로 상대편 배를 가격하거나, 넘어뜨리기도 했다. 어린시절 또래보다 힘도 좋고 키도 큰 편이었다. 무엇보다 강약약강. 약한자 앞에서 한 없이 강한 티를 냈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어린 시절이다.


동네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내 이름이 거론되었고, 동네 아이 엄마들이 우리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경비아저씨와도 사이가 안 좋았다. 경비실에 돌을 던져 유리를 깨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전거도 훔치기도 했고, 슈퍼마켓에서 절도도 했고, 부모님께 학원비를 받아서 학원은 안 가고 오락실에서 돈을 탕진하기도 했다. 학원에서 수업 중 창문 밖으로 뛰쳐 나가기도 했고, 담배에 불을 붙여 수업하는 강의실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다 초등학교때 일이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성격의 문제 이전에 그 시절 뇌의 문제라고 느낀다.


한편으로 학교에서는 꽤 얌전히 지냈다. 선배들이 많았으니 조용히 지냈다. 동네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싸우고 때리고 다녔는데, 학교에서 유일하게 싸웠던 것은 4학년이 되어서였다. 4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싸움 난 것 구경하려고, 여럿이 모인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옆 사람를 밀쳤다. 그 밀쳐진 옆 사람이 불쾌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로 강하게 때렸고, 연달아 얼굴에 3대를 맞고 나서 난 정신을 차렸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화가 나서 작정하고 반격을 하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날 잡고 말렸다. 6학년 선배라고 말이다. 말리는 친구들 틈에서 난 씩씩거리며 분노를 삼키며 그 선배를 노려봤다. 그 이후로는 학교에서 싸운 적은 없었고, 힘자랑을 하거나 허세를 부린 적은 많았다.


중학교에 진학 후 신체적 성장이 더뎌지면서, 그런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분노"에 차있을 때가 많았다.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리거나, 험악한 분위기의 가정 환경도 아니었다. 다섯 살, 여섯 살때 쯤 2살 터울의 형이 수 차례 동네에서 맞고 돌아와서 울고 있던 모습들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강해지고 싶은 욕망", "아무도 날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그 욕망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날 해병대 장교가 되게끔 만들었다.


지금은 부끄러웠던 그런 욕망과 허세들이 우연히 나의 꿈을 바꾸게 만들었다.





학교 밖에서의 일탈과는 별개로 학교 안에서는 무난하게 생활했다. 오히려 친구들을 많이 웃기는 캐릭터였다. 여리여리한 외모와 체형과 달리 힘이 세고 운동을 곧잘해서 존재감을 발휘했었다. 전교권 팔씨름 랭커였고, 이 반 저반 돌아다니며, 그 반에 팔씨름 잘하는 아이들과 팔씨름 승부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곧잘해서 학급 대표, 학교 대표로 경기를 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어울리는 친구들은 당연히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강요로 다닌 학원은 그저 친구들 만나 놀기 위한 장소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학원에 공부하러 가는 자세는 아니었다. 장난치고 놀고, 탁구치러 갔다. 학원에 탁구대가 있었고, 학원생 중에서 탁구를 제일 잘 했었다. 그것을 통해 우월감을 느꼈고, 그런 우월감이 좋았다.


1995년,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는 친구 덕에(?) 처음으로 음란물을 접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 모여 컴퓨터로 그 놀라운 사진들을 감상했다. 당시 게임중독자이자 얼리어덥터였던 나는 또래들보다 앞서서 컴퓨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활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1994년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선생님께 PC통신에 접속하는 방법,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와 같은 곳이나 인포샵 등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알려드렸었다. 친구 덕분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나는 PC통신을 너머 당시 또래 아이들은 존재 자체도 잘 몰랐던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누비며 온갖 음란물들을 접하고 다녔다. 그때 함께 접했며 좋아했던 친구 하나는 지금 목사가 되어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이상하다.


그런 능력이 결국 사단을 만들었다. 중학교 2학년 PC통신 인포샵의 어느 사진동호회 운영자가 군대 가기전에 동호회 운영자를 넘기고 가야하는데, 하필 그때 동시 접속자로 유일하게 내가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그 동호회 운영자 자리를 양도하고 그는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인 나는 분당 요금을 지불하고 접속하는 유료서비스인 인포샵의 한 사진 동호회의 운영자가 되었다. 당시 나는 인포샵 특성상 사용자가 머무르는 시간에 따라 분당 얼마씩 수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혹했다. 그리고 그곳을 운영하면서 인터넷에서 구한 음란물들을 퍼다 날랐고, 몇몇 친구들에게는 자랑스럽게 그 이야기를 떠벌렸다. 그때는 그렇게 해서 일확천금을 꿈꿨으나, 누군가의 신고로 폐쇄되고 만다. 그리고 한 동안 어디 잡혀갈까봐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로 걱정과 죄책감의 감옥이라는 벌을 한동안 받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학교에서 별명이 생겼다. "야남(야한남자)"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별명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잘못된 것임을 나도 알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시적인 별명으로 그쳤고, 금방 잊혀졌다. 그 동호회의 폐쇄로 그다지 그 별명에 걸맞는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관심도 금방 시들해져갔다. 다행히도 말이다.


더 다행히도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나는 부끄러움을 배우기 시작했다. 올바름의 길로 가는 첫 걸음이었던 것 같다. 오로지 인간만이 느낀다는 그 감정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내 별명은 "보쓰(BOSS)"가 되었다. 사실 이 별명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우쭐해지는 별명이었다. 내가 마치 이 학교의 짱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별명이었을 뿐, 서열을 메기면서 서로 싸우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 별명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당시 급격한 신체적 성장을 한 학생들과 달리,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신체적인 성장이 더뎠다.


나를 따르며 함께 지내던 또래 친구들 몇몇이 나에게 "보쓰" 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다들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그렇게 불렀다. 동급생 사이에서는 두루두루 모든 학생들과 관계가 좋았던 터라 그 별명에 시비를 거는 사람 하나 없었다. 심지어 정말 전교 일짱일 것 같은 체격과 포스를 가진 친구조차도 내게 "보쓰"라고 불렀다. 그럴 때 마다 마치 내가 정말 이 학교의 짱이 된 것 같은 우월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때론 그런 아이들 중 전교에 극히 일부가 나에게 팔씨름을 이기거나 하면, "내가 보쓰를 이겼다."고 하면서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나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 도구처럼 쓰이기도 했고, 나를 이기는 것이 굉장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온갖 불량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이어졌다.


그런데 그 시기, 중학교 3학년의 나는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망나니짓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보쓰라는 별명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갖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말씀하셨다.


"이번 중간고사 성적을 이야기해줄건데, 우리반 1등은 홍OO, 평균 97점. 2등은 박OO, 평균 96점, ... 5등"

5등에 내 이름이 불렸다.


"보쓰! 너 공부 잘했었어?"


전교의 최고 문제학생인 이OO이 내게 말했다. 나의 평소 모습과 과거의 전적(?)과 성향, 별명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이런 전교의 각종 문제아 친구들과 난 사이좋게 잘 지냈었다. 보통은 끼리끼리 노는 문화가 강하다보니, 나 같은 사람이 거의 드물었던 터라 사실 내가 특이한 경우이긴 했다. 이 친구에게 내가 받은 점수가 특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본인과 같은 과라고 생각했을 터이니 말이다.


이OO이란 친구는 평균 20점 정도였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이OO는 같은학년 전OO을 산 속 나무에 벨트로 묶어놓고 때려서 경찰들이 학교로 찾아오기도 했었다. 난 스스로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 운이 좋아 처음으로 학급 10등 안으로 들어왔다. 전교로 따지면 500여명 중에 150등 정도 한 수준이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보쓰! 다음 시험에 나 좀 가르쳐주라."

'음? 컨닝을 도와달라는 건가? 진짜 공부를 가르쳐 달라는건가?'


그 때까지만 해도 내 꿈은 의사였다. 당시 성적이 더 잘 나와야 했었기 때문에 고민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OO의 집에 방문하여 함께 공부하고 가르쳐 주면서, 내 꿈은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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