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때는 제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제자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by 임상택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득한 이곳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가장 많은 학교는 어디일까? 지역을 분당으로 한정 지은다면, 현 시점에서는 아마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매년 영재고에 조기졸업하여 합격하는 학생들이 있으며, 최근 분당에서 졸업생 인원 수 대비 가장 많은 비율로 영재고에 합격하고 있다.


또한 수학올림피아드, 물리올림피아드 등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는 아이들이 가득하다. 한국의 대표로 따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장차 세계적으로 수학의 실력을 겨루게 될 학생인 이OO도 있다. 그는 현시점 몇 안 되는 내 브런치 구독자이며(ㅎㅎ), 서울과학고에 우선선발된 중학교 2학년 학생이다. 분당에 많은 학생들이 대치동의 학원도 많이 다니는데, 이OO은 그곳에서도 최고를 다투는 학생이라고 한다.


아마 그는 이 글을 본다면 많이 쑥스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ㅎㅎ) 그 학생은 인성도 좋고 성격도 좋고, 교우관계도 좋으며, 다재다능하여 인기도 많다. 참으로 그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



무엇보다 그의 꿈은 의사가 아니다!




이곳 대부분의 학생들은 의사를 꿈꾼다.


작년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학생들의 진로희망이 궁금했다. 3분의 1 이상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였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많은 학생들이 의사를 꿈꾸는 현실이 안타깝다.' 라고. 그런데, 1년 지나면서 학생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부모님들 중에 의사가 너무 많았다. 체감하는 정도로는 한 반의 3분의 1 정도는 부모님 중 한 분 이상이 의사, 약사, 한의사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이들도 서로서로 다 알고 있었다.


"쟤네 아빠는 OO피부과 하시구요, 쟤네 부모님은 OO한의원이 하세요. 쟤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세요."

"저희 아빠는 정신과 의사신데, 요즘 선생님들 진료가 많으시다고 해요."


직접 직업을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느 날, 앞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수학을 잘하는 중학생 이OO 학생에게 수학 공부에 대해 물었다. 수학교사가 학생에게 수학 공부에 대해 묻다니!! (ㅎㅎ) 사실 만7세이자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었다. (ㅎㅎ) 어떻게 공부를 해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간략히 물어보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OO아. 너는 정말 수학을 잘하는구나. 너에게 묻고 싶다. 만약에 다른 친구가 너와 똑같은 경험과 교육을 받았다고 했을 때, 너와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아니요. 그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생물학적인 유전" 그 자체보다는 "부모가 공부를 잘 했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경험이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넓은 의미에서 유전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학 입시 정도까지는 부모에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조금 불리하거나 더 수고로울 수 있다는 정도랄까? 불리한 것만큼 더 노력이나 투자가 있다면 입시에서는 유사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최고 또는 세계 최고가 되려면, 공부에 있어서도 유전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학문적 성취의 발전 속도와 한계가 있어서 생물학적 유전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을까?


수학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교수님께서는 영재고 입시에는 실패(?)했으나, 아버님께서는 고려대 통계확과 교수님이시다.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단순히 결과만을 보았을 때, 입시와 학문적 성취가 가지는 차이와 유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좋은 교육 환경, 부유한 가정, 뛰어난 유전 등을 갖춘 이곳의 학생들이 노력까지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이 이 지역의 학생들과 실력을 견주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어디까지나 학업 면에서만 말이다.


참고로 앞서 압도적으로 수학을 잘하는 이OO 학생의 아버지는 의사셨고, 어머니는 약사셨다. 혹시나 했는데.


아니, 무슨 세상에 이렇게 의사가 많아?
14년 동안 의사 부모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다 여기 있었나 보다.




선생님, 그때는 제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지금 가르치는 중학교 3학년 학생 중에도 2학년의 이OO 학생 못지 않게 훌륭한 학생들이 많다. 사실 모든 학생들이 다 훌륭하다. 나만 훌륭해지면 된다.(ㅎㅎ)


그 중에 의대는 가고 싶은데, 의사는 안 하겠다는 학생이 있다. 그 사실만 보면 특이한 학생이라 하겠지만, 그 내막을 알면 그 신념과 의지에 감탄하게 되는 학생이다.


이 학생의 아버지는 MIT를 나오셨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를 이기고 싶어했던 아이. 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이과적으로 뛰어난 두뇌를 가졌는데, 본인만 이과가 아니고 문과 성향이 강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아이. 수학 시험에 대한 불안이 있고, 때때로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고 침울해 하다가도 또 극복해 내는 아이. 그런 아이였다. 지금 중학교 3학년이니 아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말이다.


보통 중고등학교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교무실로 가지만, 난 바쁘지 않으면 교실에 남아서 학생들과 쉬는 시간 동안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도 곧잘 내 주변에 모여서 칠판과 교탁 근처에서 같이 대화를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쉬는시간이 훌쩍 끝나버리고, 교무실에 들리지 않고 바로 다음 반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어느 쉬는 시간이었다. 의대는 가고 싶은데, 의사는 하지 않으려는 그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10년 후에 연락해도 되요?"

"그럼! 연락하고 찾아와도 돼. "


많이 기뻤다. 그것은 정말 교사로 느낄 수 있는 정말 큰 기쁨과 보람 중에 하나다. 다만 그때 달라져 있을 나이 든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실 건강과 노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 다시 만나러 찾아온 학생이 늙어버린 나의 모습에 슬퍼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타적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선생님, 그때는 제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하하..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몸에서 시체 냄새라니... 누가 들으면 살인자가 진로희망인 줄 알겠다."


마침 흉흉한 사건들도 많았던 시기였다. 그나저나 아마도 저런 말을 들어보는 교사가 있었을까? 조사된 바가 없으니, 그냥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했으면 좋겠다. (ㅎㅎ) 이어서 '정말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에 그 학생이 먼저 말을 했다.


제 꿈을 이룬 거 잖아요.



그랬다. 제자의 꿈은 <법의학자>다.



20221111_153916-2.jpg 그 제자가 작년에 쓴 편지.


내가 제자에게 <선생님>이란 어떤 직업인지 알려주었다면, 제자는 나에게 <법의학자>란 어떤 직업인지 알려주었다.


공무원에 가까운 직업적 특성과 소득. 열악한 근무 환경. 무엇보다 환자가 아니라 시체를 마주해야하는 직업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법의학자의 수가 이토록 적다는 것을 제자를 통해 알게 되었고, 소득도 내 예상 밖이어서 또 한 번 놀랐다. 의대를 가더라도 모두가 말리는 직업, 부모님도 선뜻 응원하기 어려운 진로였다. 어찌보면 교사와 닮은 점이 많았다.


제자는 모두가 같은 이유로 의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특히 경제적 이유 등 통상적으로 의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갖는 이유 외에도 다른 것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다.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안정성, 가르치는 것에 대한 적성 때문에 교사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 존재하는 비행 청소년들을 위해 교사가 되었다. 학교의 문제 학생들의 상황과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기 위해 교사가 되었다. 15년이 되어가며, 조금씩 초심을 잃어가던 나에게 학생은 큰 자극을 주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떻게 하면 교직 말고 다른 일 하며 편하게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나를 반성케 한다.


나는 제자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고,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존경은 꼭 교사가 학생에게서 받아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사 또한 마음 속 깊이 학생을 존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난 많은 학생들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 이 제자도 그 중 하나다.



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법의학자의 학창시절을 보고 있다.






30년 뒤, 이 유명한 법의학자를 찾다가 오신 분께 말씀드립니다.


그녀의 타임라인 중 15살 시기의 그 선생님이 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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