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같은 중학생인데, 공부하는 문제아 학생이 왜 기특해 보이는가
<1. 교사들은 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을까?> 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학급 학생들의 성적을 공개해버리는 바람에 전교의 최고 문제아인 이OO은 나의 등수를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다음 시험기간에 임박했을 때쯤 이OO과 나는 공부 약속을 잡았다. 이OO은 나에게 말했다.
"보쓰!"
"응?"
"토요일날에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와서 나 공부 좀 가르쳐 줘."
"그래? 좋아."
이OO이 전교 최고의 문제아였다 하더라도, 이OO이 갑이고, 내가 을의 위치는 아니었다. 그저 동등한 관계였다. 내 별명이 보쓰인 관계로 누가 보면, 내가 더 문제아 같아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사실 흔쾌히 응한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냥 이OO의 집이 궁금했고, 뭔가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서울이었지만, 한강을 기준으로 참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잘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거창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그저 짜장면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종종 친구네 집에 가면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을 시켜주시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그 날 우리 집에서 밤 샐래?"
난 약간 망설여졌다. 태어나서 잠을 안 자 본 날이 없었다. 나에게는 전교 최고의 문제아 이OO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잠을 안 자고 밤을 새는 것이었다. 차마 살면서 한 번도 밤을 새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여러번 밤 새본 적이 있던 것 처럼 보이고 싶은 허세의 마음이 갑자기 발동했다.
"으... 응? 그래.. 근데 너는 밤새 공부하는 게 괜찮겠어?"
한 발 물러서 주길 바랬으나, 이OO은 웃으며 말했다.
"뭐 나야... 자주 밤 새고 노는데? 밤 새는 건 어렵지 않아.."
괜히 한다고 했나. 생각해보니 얘는 학교에서 주로 잠을 자는 아이였다.
함께 밤을 새서 공부하기로 한 날이 되었고, 나와 이OO은 이OO의 집을 향했다. 토요일이어서 당시에는 오전 수업만 하고, 이OO의 집을 간 것이다. 집에 들어갔을 때 내 예상과 달리 아무도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OO의 어머니와 잘 차려진 점심식사였다.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먹을래? 짜장면 먹을래?"
"어? 응"
이OO은 익숙하게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했다. 냉장고를 열더니 오렌지 주스 페트병 1통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 1통을 다 마신다. 나는 이런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여러모로 내가 살아왔던, 봐왔던 삶과 다른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짜장면을 같이 먹고 나서 같이 공부를 시작했다. 오래 전 기억이어서 무슨 과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회나 역사 과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외우기 쉽게, 기억하기 쉽게 여러가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이야.. 공부를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였어?"
하면서 이OO이 황당하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말을 했다.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더 황당한 것은 나였다.
'OO야.. 그거 선생님이 말했던 것... 완전히 똑같이 이야기 한 것 뿐이야.'
라고 말 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대단히 잘 가르치는 것처럼 으쓱하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때 은연 중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교실 앞 교탁에서 하는 말과 학생의 곁에서 하는 말이 학생에게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를 말이다.
한참을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했다가, 운동 이야기 했다가, 팔굽혀펴기 했다가, 싸움 이야기 했다가 등등 제대로 공부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OO의 어머님이 집에 들어오셨다.
어머님은 집 안에 친구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친구가 평소 보지 못했던 친구라는 것에 더 놀랐고, 또 그 친구가 공부를 가르쳐주로 집에 왔다는 것에 더욱 더 놀라셨다. 당시 나의 뽀얀 피부와 선하게 웃으면 꽤 착해 보이는 외모 덕에 부모님은 날 굉장히 괜찮게 보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어머님의 행복해 하는 표정을 기억한다. 평생토록 말이다.
공부는 별로 한 것도 없지만, 어머님은 마냥 좋아하셨다. 퇴근하신 듯 보였는데, 바로 기쁜 표정으로 저녁 식사를 차려주셨다.
온 종일 수다를 떠느라 배고팠던 터라 나는 밥을 세 그릇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님이 참 좋아하셨다. 자주 오라고 하셨다.
새벽 3시였을까. 분명 밤을 샌다고 하고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둘 다 지켜서 잠이 들었다 깼다. 아예 그냥 잘까 싶은 생각이었는데, 이OO이 말했다.
"밖에 나가자."
"뭐? 지금 이 시간에?"
난 새벽 3시쯤에 밖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굉장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또 허세가 발동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고요한 새벽 3시의 외출이 이루어졌다.
차들도 다니지 않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공간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는데, 공기가 너무 청량하고 맑아서 숨쉴 때 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OO이랑 이 시간에 같이 여길 걷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황당했다. 이OO은 자판기 옆에 멈춰서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아 마셨다. 나는 당시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코코아를 뽑아 마셨다. 이OO은 주섬주섬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코 끝에 내가 싫어하는 담배 냄새가 전달되었다.
"너는 담배 피지 마라. 나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
"..."
이OO은 인생 몇 회차 산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다. 연기를 입으로 내뿜는 그의 모습은 인생의 고난을 담배 연기로 함껏 내뿜는 것 처럼 보였다. 문득 이OO의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보쓰! 우리 이제 서OO네 집에 가보자."
"...?"
새벽 3시가 넘었는데, 다른 친구네 집에 가보자는 말을 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황당한 말이었고, 지금까지도 참 황당하기 짝이 없는 기억으로 강렬히 남아있다. 나의 대답을 생각하고 말한 것은 아닌 듯 했다. 나도 특별히 말 없이 쫓아갔다.
서OO의 집 아파트인 듯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이OO는 손가락으로 층수를 세고 있었다.
"1층, 2층, 3층, ..., 7층... 저기네."
"설마 저기 불 켜진 저기?"
이OO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 시간에 불이 켜진 집이 그 건물에서 두 세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에 한 집이라고? 서OO는 이OO와 더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친구였다.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시험 전 주말이라고 해도...
'설마... 걔가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