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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요!

프라하 한달살이(2017-18)_천국의 문(Pravcicka Brana)

by limstory

프라하 공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남편이 가져온 체코 국립공원 관광 안내 팸플릿은 나에게 던져진 숙제와도 같았다. 남편이 귀국하고 아이들과 나만 있을 동안에 꼭 마스터해야 하는 미션 같은 것. 국립공원이 의례 그렇듯이 교외에 위치해 있었고, 여행객들은 보통 현지 투어를 이용하고 있었다. 최대한 내 힘으로 준비해서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여러 곳 중 가장 난이도가 낮아 보이고 포털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천국의 문(Pravcicka Brana)’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나와 아이들 각자의 소지품에 에너지바, 양말, 물 등을 챙기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1박을 할 짐까지 내 가방에 넣은 후 아침 일찍 프라하 중앙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pubtran이라는 대중교통 앱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기차와 지역 버스를 연결하는 계획까지 무리 없이 짤 수 있었다. 단, 현지 상황을 잘 모르니,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움직였다.

이제는 익숙한 프라하 중앙역
pubtran을 이용하여 계획한 스케쥴
데친 가는 길, 강변을 따라 올라가는 아침, 절경이다.


데친(Decin) 역에 내려서 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1 adult and 2 children, please.’를 번역해둔 캡처본을 버스 탈 때마다 보여주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소도시 여행도 큰 문제가 없다.

Pravcicka brana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맞은편으로 바로 산길이 시작된다. 오후에 접어드는 시간이라, 파워워킹을 시작한다. 다행히 앞서가는 두 명의 한국인이 있어, 대화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든든하다.

얼마나 파워 워킹을 했는지, 1시간이 걸린다는 거리를 30분 만에 돌파했다. 머릿속에는 '산속에서 해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갖지 못하고, falcon's nest에 도착했다. 그제야 조금 여유가 생긴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가진 큰 불만 중 하나는 '겁 없이 여행을 계획하고, 겁내며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뷰포인트의 절경을 구경하는 동안, '위험해, 그만 가'라는 소리를 얼마나 했던지.. 기어코 아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엄마는 겁이 너무 많아."

'얘들아, 엄마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단다. 너희들도 지킬 것이 생겨봐라, 겁 없이 되는지..'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너희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을 뿐이란다.'


영업을 하지 않는 falcon's nest에 앉아 가져 간 간식을 나눠먹고 돌아내려왔다. Pravcicka brana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Hrensko까지 걸어 내려갔다(약 30분 정도 소요). 여행을 하다 보면 대개는 아이들이 앞서서 걷고, 내가 뒤에서 따라 걷는다. 여전히 저 아이들은 내가 보호해야 하는 아이들이지만, 이제는 드문드문 저 뒷모습에서 든든함이 느껴진다.

Hrensko까지 걸어내려 가는 길
Hrensko 마을

Hrensko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벽난로에 붙어 앉아 몸을 녹인 후, 버스 시간에 맞춰 나왔다.

Hrensko의 밤. 여기서 1박을 하는 것도 좋겠다.
데친역에서 프라하행 기차를 기다리며..

아이들의 안전과 모험 사이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항상 follow my gut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저런 불만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 주체적으로 너만의 여행을 할 때가 오겠지. 엄마는 그날을 위해 현재의 안전을 도모하며, 그날이 빨리 오길 응원할게!


천국의 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걷는 길, 남편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시도한 페이스 톡, 추울 때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먹은 다섯 끼의 식사, 따뜻한 벽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든든했던 한국인 두 분... 덕분에 천국의 문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하루는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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