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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빛으로 아테네의 정전을 밝히다

아테네 한달살이(2018-19)_에어비앤비 블랙아웃

by limstory

저렴한 가격에 선택한 아테네 에어비앤비는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숙소였다. 중심지와 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투룸 하우스. 더블룸과 트윈룸이 각 각 하나 씩이라, 서로의 사적 공간을 지켜줄 수 있어서 청소년 아이들과 한달살이를 하기에는 완벽한 구조였다. 작은 주방은 편리했고, 근처에는 큰 마트가 있어 식료품을 사기에도 용이했다.

트윈 침대로 구성된 아이들 방
작지만 유용했던 주방


하지만 이런 수많은 장점을 상쇄할만한 단 하나의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블랙아웃; 정전이었다. 우리가 전기를 많이 썼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테네의 전기 인프라가 좋지 못한 때문인지, 저녁 무렵이면 한 번씩 정전이 되었다. 남편이 있는 동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호스트와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남편은 여기저기 전기시설을 점검해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엇보다 남편이 옆에 있어서 든든했다.


그날은 남편이 귀국하고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 나름대로 최대한 전기를 아끼기 위해 오븐도 안 쓰고, 헤어드라이어도 쓰지 않고 천장에 달려 있는 히터로 머리를 말리며 노력을 했는데도, 아테네에 첫눈이 오는 추위 때문이었는지 또 정전이 되고 말았다. 남편도 없고, 호스트는 기다려 보라고만 하고... 하지만 쉽게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손전등을 비춰가며 밥 먹기


준비하던 저녁을 대충 먹고, 밤새 전기가 복구되지 않을 경우에 내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짰다. 난방이 안될 경우를 대비하여 더블 침대에 세명이 모였다. 휴대폰 손전등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안하다. 휴대폰이 방전되면 곤란하니까...


여러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만 생각하던 나에게 아이들이 빛을 비춘다. 아들이 휴대폰을 들고 딸아이는 손으로 그림자를 만든다. “엄마, 이것 좀 봐요. 하트예요.” “이번에는 새를 만들어 볼게요.” “이건 어떤 동물이게요?”... 정신이 퍼뜩 든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불안해하겠구나.’ 까맣게 타들어가던 내 마음과 머리가 아이들 덕분에 겨우 여유를 되찾는다. ‘그래. 이게 뭐라고. 밤새 전기가 안 들어오면 옷 껴입고 한침대에서 자다가, 내일 다른 호텔 알아보면 되지 뭐.’ “엄마 이것 좀 봐요.” 다시 한번 더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눈을 뜨고, 세상의 밝은 빛을 본다. 겨우 휴대폰 손전등 불빛인데, 온 세상을 비추는 것 같은 것은, 우리 아이들의 밝음 덕분이겠지.


아테네에 어둠이 내려앉아도 나의 아이들이 밝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나아가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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