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가족 여행(2014)_코톨드 미술관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지는 영국 런던이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아이들이 자기 짐은 자기가 챙길 수 있을 때까지는 해외여행은 미루자’ 던 나와 남편의 계획은 예상보다 일찍 깨어진 것이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라 익숙한 곳을 정하다 보니, 내가 반년가량을 보낸 영국 런던이 우선 1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첫 해외여행지 치고는 제법 먼, 영국 런던이 우리 가족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가 되었다.
2000년, 20대의 나는 약간 구김살이 있던 아이였다. ‘이 시대에는 돈이 다리미다. 구김살을 확 펴준다.’라고 했던 영화 기생충의 대사가 나는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소심하고 구김살이 있던 동양의 여자 아이가 오전에는 nursing home에서 part time을 하고, 오후에는 어학원에 갔다가, 주말에는 레스토랑에서 part time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이었다. British Museum은 말할 것도 없고, National Gallery, National Portrait Gallery에 가면, 그곳의 차분한 공기에 치유를 받는 기분이었다.
무료로 운영되던 수준 높은 전시품과 예술품을 관람하는 동안, ‘접근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대륙으로의 신속하고 빈번하고 저렴한 물리적인 접근성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유산에 대한 이러한 풍요로운 접근성이 너무나 부러웠었다. 정말, 그곳의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아이들과 여행을 계획하며 내가 너무나 부러워했던 그들의 컬렉션(물론 약탈의 컬렉션이지만) 관람에 많은 비중을 두었고, 그 와중에 코톨드 미술관 Courtauld Gallery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볼거리가 지나칠 정도로 많은 런던에서 5박 6일의 짧은 여행 기간 동안 몇 시간을 할애할 만큼 괜찮은 곳일지에 대한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판단은 아주 아주 옳았다.
누구나 알만한 화가들의, 누구나 한 번씩 들어봤을 법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도, 사람들 뒤통수만 구경하고 왔던 National Gallery와는 달리 관람객이 적어 넉넉한 공간에서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런던의 미술관에서 발견하기 힘든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 슬픈 표정을 함께 지어보아도, 세잔의 그림 앞에서 똑같이 카드놀이하는 흉내를 내어 보아도, 너무 잘 그렸다고 아들이 감탄한 루쏘의 톨게이트 앞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도, 아무에게도 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여유롭고 편안하게 좋아하는 그림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림 속의 주인공의 눈빛을 살피고 같은 포즈와 표정을 지어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림은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그림 속 쉬종Suzon의 눈빛이 너무 먹먹해서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작품 해석을 인용하는 것마저 그녀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그림은, (그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 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사진이다. 대부분의 여행 사진을 파일로 저장하지만, 몇몇 사진은 인화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쉬종의 이 표정이다. 이 눈빛은 나에게 모든 이의 하루가 빛나지만 어둡고, 고되지만 소중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코톨드 갤러리는 2018년에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가 지난해 말에 오픈했다고 한다.
다시 런던을 방문한다면, 코톨드 갤러리를 또 방문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 코톨드 갤러리를 방문하기 위해서 다시 런던을 방문할 계획이니까.. 그동안 쉬종의 하루가 편안해졌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