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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다른 아이들의 소통 방법

로마 한달살이(2015-16)_프라스카티

by limstory

로마는 철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교외로 당일 여행을 나가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그날은,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프라스카티로 향했다.

떼르미니 역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이 작은 도시는, 멋진 빌라와 공원 등이 유명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에게는 '스케이트 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갑자기 로마에서 스케이트라니?? 한국에서도 타보지 않은 스케이트를 로마의 근교 프라스카티에서 타게 될 거라고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침 토요일이라 빌라 알도브란디니는 문을 닫았고, 종일 흐린 겨울 날씨라 공원도 을씨년스러울 뿐이었다. 파사드가 멋진 성 베드로 성당에 다가갔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큰 음악소리! 알고 보니 성당 앞 넓은 광장에 임시 아이스링크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던 것.


온종일 회색빛 도시에서, 뭔가 은빛 스파클링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싫어하는 딸은 타지 않겠다고 하여, 아들만 타기로 했다. 문제는, 딸랑 스케이트화만 빌려주고 보호장비는 하나도 대여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아들, 스케이트 처음 타보는데… 처음에는 울타리만 잡고 돌다가, 점점 손을 떼고 걷기도 하고, 그러다가 꽈당 넘어지기도 한다. 나 또한 운동신경이 제로라, 어떠한 도움도 줄 수가 없고, 그저 자기 혼자 걷다가 넘어지다 반복하던 중이었다.

넘어져도 제대로 일어나기가 힘들어 낑낑대고 있으니, 주위에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던 소녀가 다가와 도움을 준다. 말하는 소녀도, 듣는 우리 아이도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니, 처음에는 어설프게 영어로 설명을 하다가 이도 저도 안된다고 생각을 했는지, 몸으로 시범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우리 아들은 그걸 또 이해하고... 물론 이탈리아어를 알아들은 것은 절대 아니고, body language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눈치’로 소통을 한 것이리라.


어설픈 공용어는 오히려 소통의 장애가 될 뿐이다. 자신 없는 언어로 말할 때, 언어 외의 표현도 지장을 받게 되고, 결국 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 아이들은 얼마나 현명한가! 가장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나 빨리 알아내다니! 우리 아들은, 'thank you'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아이였지만, 어쩌다 보니 '고맙다'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분명히 확신한다. 그 소녀도 우리 아들의 고마운 마음을 알아들었으리라!



점심을 먹으러 간 곳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메뉴판을 보고 steak를 주문하면서도 이게 beef인지 pork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질문을 하는 나도, 대답을 하는 이탈리아 사장님도 서로 답답하긴 마찬가지. body language를 쓰면서, 'moo~'인지 'oink'인지 물었으나, 그것도 실패! 결국 '돼지인들 어떠하리, 소인들 어떠하리' 하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어쨌든 ’고기’는 나오겠지.

정작 서빙된 것은 '돼지고기가 곁들여진 감자튀김'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스테이크라고 하기엔 접시를 가득 채우는 감자튀김이 훨씬 많았다. 아이들과 이걸 보고 어찌나 웃었던지... 결국 우리는 의사소통에 실패했지만, 그 또한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결국 소통의 중심에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도와주려는 마음, 이해하려는 마음. (어쩌면 우리의 이해하는 마음은, 접시보다도 더 큰 마르게리따 피자로 인해 피어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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