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전이든, 결국은 맺어야할 열매를 맺는다
비록 내가 원하던 모양의 열매는 아닐지라도
2010년즈음, 나는 승무원을 꿈꾸며 국비지원 장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승무원학원 해외취업 준비반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던가. 영어로 자기소개부터 면접, 실무를 위해 필요한 잡다한 지식들을 시간표대로 열심히 익혔다.
하지만 그 과정을 졸업하기도 전, 나는 학원 게시판에 붙은 기자 모집 공고에 지원을 했고 덜컥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한 온라인 매체의 기자가 되었다.
비록 내 전공이 교육학과 국어국문학(복수전공)이기도 했지만... 사실 몇 차례의 승무원 면접 탈락과 내 적성에 과연 맞을까?라는 의문 때문에 한 선택이기도 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못해 수업 마치고 밤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러느라 스터디에 제대로 참여조차 못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내 모습에 스스로 지쳐서이기도 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초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기사쓰기반에 들어갔을 때 제외하고는 도전할 생각조차 못 해본 일이었다. 하지만 첫 기사 테스트에서 "정말 기사 처음 써보는거 맞냐?"라는 말을 들었고, 아카데미에 다닌 적도 없었는데도 기사 쓰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피나는 노력 없이도 그냥 내게는 쉬운 일이고 편한 일이었다. 물론 발로 뛰기보다는 앉아서 기사를 생산해내는 온라인 매체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로도 연관된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31개월 아이를 키우는 지금, 나는 감사하게도 8년째 한 언론홍보대행사의 프리랜서 기자로 광고기사를 작성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다. 재택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도, 아이를 가지고 출산하고 육아에 전념하는 지금까지도 기사 쓰는 일을 쭉 놓지 않고 있다. 20대 때는 술을 잔뜩 마셔도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출근 전에 기사를 작성해 보냈고, 지금은 아이가 잠든 후 12시무럽부터 2시정도까지 매일 기사를 써서 보낸다. 몸에 익숙해져서인지 매일 한두시간 할애하는게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독박육아에 지친 내겐 자존감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승무원 준비를 시작할 때, 부모님까지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셨던 기억이 난다. 지원도 해주셨지만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은근히 포기하라는 뉘앙스를 내비치기도 하셨다. 내 분수가 뭔데? 그만큼만 꿈꾸니까 그만큼밖에 이루지 못하는거야! 분하고 화가 치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속 깊이 그 말이 새겨져 자신감을 갉아먹는 것을 느꼈
다.
자신감,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감은 노력해서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안 될 것이란걸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는지도, 혹은 당장 합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제 그 직업이 감내해야 할 수많은 고충과 반드시 필요한 자질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모자람, 부족함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일인 것 같아 죽도록 내면의 전쟁을 치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무모하고 억지스러웠을지 모를 도전이 없었다면 내게 맞는 직업을 찾는 일도, 결혼해 아이를 낳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 도전과 치열한 고민, 좌절 끝에 기자공고에 지원을 하게 됐고, 그때 함께 수업 듣던 친구가 소개해준 남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으니. 어쩌면 타인들이 보기엔 인생에서 쓸데 없이 낭비한 것처럼 보일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한 가장 짧고 굵고 효과적인 루트였던 것 같다. 무모함을 스스로 알았기에 더 치열했고, 반복되는 실패가 아팠기에 또 다른 무모할지 모르는 길을 찾아 나섰다가 이 곳에 이르러 있으니.
허영에 찬 생각이리고, 너는.안 될 거라고. 너에게 맞지 않는 길이라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내 이야기가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으면 한다. 나도 그런 말을 들었었는데 그냥 했고, 결국 그길은 아니었지만 다른 길에서 그 선택과 노력을 보상 받았다고. 최선을 다한 시간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보상 받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던 열매와 좀 다른 모양일지라도, 결국 열매는 맺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