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상황이 오히려 불안한 이유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마음의 영점...
요즘 다이어트를 하는데, 정말 한 번 설정된 체중의 영점을 바꾼다는 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실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 이후 새롭게 세팅된 내 몸무게의 영점은... 아무리 찌고 빼기를 반복해도 슬그머니 그 자리에 돌아와 있다. 그 몸무게가 내 몸이 가장 익숙한 무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음에도 영점이 있다. 내 첫 연애는 불안했고, 늘 마음 졸이며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덜덜 떨게 되는 편치 못한 관계였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도 안정적인 연애가 어려웠고 늘 온전히 행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관계가 안정되고 편안해지면 당장 그만둬야 할 것 같고 밀어내야 할 것 같았다. 행복을 인정하는 순간 그 행복만큼 큰 상처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것 같았다. 내 연애의 영점은 불안함에 세팅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결혼을 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애정표현이 많지 않고 다소 무뚝뚝한 편이다.
일에 대한 영점도 있다. 나는 늘 야근이 많고 늘 뼈를 갈아 넣을 듯 나를 육적으로 심적으로 깎아내며 일하는 직장들을 경험해왔다. 그래서인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회사로 옮겼을 땐 어색함을 느끼며 안절부절못하곤 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지금,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은 나를 무척 불안하게 만든다. 매일 일에 쫓기고, 쉬는 날조차 일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늘 불안한 삶을 살았던 내 전 직장들의 기억이 몸에 밴 듯. 지금도 끝없이 무언가를 하며 시간에 쫓겨야 하루를 제대로 산 것만 같은 강박이 나를 괴롭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행복하기에, 나에겐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기사를 통해 방송인 서유리 씨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간략한 내용을 접했다. 많은 고생을 했지만 결혼해 행복을 누리고 있는 줄 알았던 그녀인데, 숨이 갑자기 쉬어지지 않는 공황발작 증세를 겪고 있다고. 지금의 행복이 사라져 버릴까 두렵다고 말하는 그녀. 오랜 고생으로 그녀의 마음도 불안함과 힘듦에 영점이 맞춰져 버린 것 같았다. 다른 사람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나는 그런 그녀가 진심으로 편안해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이 행복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하면, 그걸 잃을까 봐 저렇게 아프기까지 할까.
지금의 행복을 순수한 마음으로 누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힘든 날을 오래, 혹은 고되게 겪었을수록 좋은 날이 왔을 때 의식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애써 노력까지 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았다.
내가 택한 방어기제는 오히려 쿨한 척, 지금의 관계와 행복은 별 것 아닌 척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잃어도 내가 덜 다칠 것 같으니까. 내 가식적인 방어기제와 달리 좀 더 용기 있고 순수한 그녀는 행복 그대로를 인정하고 있기에 더 아픈 걸 지도 모르겠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그녀도 나도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