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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아이를 키운다는 것-제약 속에서 길을 찾는 삶

박지선 씨의 소식에, 3년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by 임수정

음식에 제약이 없는 육아를 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이건 우유가 들어 있으니 먹으면 안 돼", "이건 계란이 들어 있으니 먹으면 아야해", "이거 먹으면 콜록콜록하고 주사맞고 병원가야해"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육아,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먹고 싶다는 음료와 빵과 케익, 과자를 마음껏 고르게 하고 사줄 수 있는 그런 육아란...아마 그랬다면 내 아이의 키도 몇 cm는 더 컸을 것이고, 나는 어딘가 회사에 소속되어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제약 있는 삶이란, 불쑥불쑥 가슴이 저릿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삶이다. 이제 막 말문 터져 할 줄 아는 말도 많지 않은 아이가 "이건 다 우유가 들어있네~"라는 말은 또렷이 하는 모습을 볼 때, 친구들이 먹는 우유가 들어간 간식을 너무나 먹고 싶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볼 때, 유아반찬을 검색하고서는 우유와 계란이 있는 레시피를 다 제외하고 나니 정작 해줄만한 것이 몇 개 남지 않을 때, 그리고...미처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내 실수로 내가 먹인 음식에 아이가 기침하고 토하며 숨쉬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 그런 아이에게 내 손으로 주사를 꽂고 응급실로 달려갈 때.


아이에게 우유,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11개월때였는데, 그때부터 지금 대략 38개월이 될 때까지 나는 이 일로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울 여유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뛰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내가 울면 이 모든 현실이 기정사실로 내 가슴에 박힐 것 같아 의식적으로 외면하기도 했었다. 간혹 남들이 힘들겠다고 말해도 담담하게 그렇다고, 그런데 익숙해져가고 있고 나아질 거라고 대답해오곤 했었다.


그런데, 박지선 씨의 부고를 듣고 마음 한 켠이 너무나 저릿해졌다. 물론 그녀에 대해 너무나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에 언급된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자꾸만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공개되길 원치 않았다지만 공개되어버린, 어머니의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다"라는 유서까지...그 날 아이가 어린이집 간 새 기사를 읽으며 처음으로 혼자 엉엉, 질질 울었다. 아이의 삶에 지워진 짐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다는 그 무력감, 그런 아이를 차마 말리지 못하고 함께 해야 할 만큼 깊었던 그들의 고통이 사무치게 아팠다.


피부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의 제약은 음식 알레르기의 제약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오랜 세월 너무나 밝고 착한 모습으로 이를 감당해온 그녀를 떠올리며...고작 4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음식 앞에서 "이거 우유 안들어갔어요? 승현이 먹어도돼요?"라고 밝게 묻는 내 아이의 모습이, 아나필락시스때문에 숨도 못쉬며 응급실에 들어갔다가도 웬만큼 회복되면 "이제 나가도 돼요?"고 칭얼대는 해맑은 내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저며왔다. 부디, 이제는 아무 제약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자유롭고 편안하시길...


우유, 계란 알레르기는 크면 없어진다고들 한다. 오늘 알레르기 전문의가 나오는 유튜브에서 "예전에는 3돌 무렵이면 70~80%가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후 연구에서는 7~8세 이후, 최근 연구에서는 사춘기 이후에 70~80%가 없어진다고 한다"며 점차 알러지가 사라지는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내 아이가 부디 그 70~80% 안에 들어 있기를, 최대한 빨리 제약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알레르기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해 여러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내 아이의 사례는 정말 작게 느껴질 만큼 심한 알레르기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보았다. 본인의, 혹은 아이의 알레르기로 늘 긴장된 삶을 살아가며 수 없이 많은 돌발상황을 겪어내는 분들의 그 질기고도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기에 내가 쓰는 글이 약간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한다.


기사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하지만 '과연 내 삶에 쓸만한 것이 있을까? 마음에서 무언가 흘러넘쳐 글이 되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늘 주저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내 아이의 알레르기와 함께하는 삶, 제약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삶에 대해 조금씩 써나가 보려 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위로와, 화이팅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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