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러지, 아나필락시스를 겪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아이에게는 우유, 그리고 계란 알러지가 있다. 처음 발견한 것은 11개월 무렵, 생우유를 한 모금 먹은 아이가 입술이 붓고 얼굴이 붉어졌을 때였다. 이후 병원에서 한 검사를 통해 우유와 계란 알러지가 무척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년에 한 두 번은 실수로 우유 성분이 들어간 음식 때문에 아나필락시스가 온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달려간다. 이런 응급 상황에는 아이가 기도가 부어 숨을 쉬기 어렵고,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져 정말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가지고 다니는 주사(젝스트)를 내가 직접 찔러 응급처치를 한 뒤 응급실로 가서 산소포화도와 심박수, 혈압을 체크하며 6시간 정도 대기하다가 귀가하곤 한다.
"어머님, 승현이는 아픈 아이잖아요. 그래서 어머님이 더 마음이 많이 쓰이실거예요"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하다가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아이가 아픈 아이라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우유, 계란만 조심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멀쩡한 아이인데, 이걸 아픈 아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나... 부정하고 싶었다. 이후 몇 달 뒤 응급실로 또 아이를 안고 뛰어가던 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인정했다. 맞아, 내 아이는 아픈 아이라고 볼 수 있지. 다행히도 내가 관리만 잘 해준다면, 완벽하게 차단해준다면 전혀 문제 없긴 하지만...문제는 그게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지만...
한 번씩 아이가 응급실에 다녀오고 나면, 새삼 아이의 건강한 모습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 순간을 잘 넘겼기에 다행이지, 정말 자칫 손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이와 이렇게 일상을 누릴 날이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와 늘 함께 있으니 내가 응급처치라도 해줄 수 있지만, 점점 커서 내 손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면...내가 손 쓸 수 없을 때 아나필락시스가 온다면....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까맣게 변한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보니, 나는 오롯이 혼자 아이를 돌봐 왔다. 임신 때는 1-2년만 아이를 키우고 이후 복직해 맞벌이를 하리라 호기롭게 큰 소리를 쳤지만, 아이 알러지를 겪으면서 절대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린이집에서 실수로 친구 우유를 마셔서, 혹은 미처 모르고 먹은 음식 속 우유 성분 때문에 어린이집에 뛰어가 응급실에 데려가는 일이 한 두 달에 한 번은 꼭 발생했다. 아이에게 10분 이내에 달려갈 수 있는 반경 안에 늘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만약 내 일 욕심으로 아이에게 빨리 가지 못해 혹시나 잘못된다면, 나는 내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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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필락시스가 올 때 첫 증상은 켁켁거리는 기침이다. 아이가 물 마시다 사레만 들려도, 찬 음식을 먹고 기침만 해도 내 심장이 오그라들고 손이 차가워진다. 아이에게 "괜찮아? 느낌이 이상한것 같아? 엄마가 주사 놔줘야 할 것 같아? 병원 가야할 것 같아?" 연달아 질문을 퍼붓고 지금 뭘 먹었는지, 조금 전엔 뭘 먹었는지 당장 모든 음식을 빠르게 체크하고 전성분부터 꼼꼼히 다시 읽어본다.
며칠 전에는 남편이 쪄준 만두를 먹은 아이가 켁켁 기침을 해 급히 항히스타민제부터 먹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전성분에 '난백분말'이 씌여있었다. 알레르기 유발 성분에 '알류'도 적혀 있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먹이기 전 읽고서도 우유, 계란이라는 글자가 아니니 무심코 넘겨버린 것이다. 그나마 난백분말이니 약으로 진정됐지, 유청분말이었다면 여지없이 기도가 붓고 응급실 신세를 졌을 것이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내 수명이 몇 달씩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진짜 내 수명을 떼어줘서라도 너의 알러지가 없어질 수만 있다면, 내 장기 하나를 떼어줘서 네 알러지가 없어질 수만 있다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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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잠자리에 누워 아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마음 속으로 말을 걸었다. 우리 승현이 배야, 우리 승현이 백혈구야, 림프야, 장기야, 안녕. 너희가 우리 승현이를 위해 얼마나 애써주는지 알아. 그런데, 우유랑 계란이 들어와도 너무 놀라지 말고, 다른 음식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면 안되겠니? 다른 아이들은 그거 먹고 쑥쑥 잘 자라거든. 너희가 우리 승현이 지켜주려고 그러는거 아는데, 정말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조금만 덜 놀라고, 조금만 덜 반응해주고,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어.
내가 거는 말을 들어줄까. 내 마음이 전달돼서, 우리 아이 몸이 정말 그렇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심은 통한다는 말도 있으니, 네 몸 속의 장기와 혈액에게도 내 마음이 혹시나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식을 위해 물 한 그릇 떠 놓고 달을 보며 빌었다는 옛날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런거였구나, 요즘 매일 생각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 간절한 마음이라도 혹시나 통하지 않을까 있는 힘껏 빌어보는 것. 오늘처럼 내일도, 매일매일 아이 배를 쓰다듬으며 마음 속으로 간절히 말을 걸어보려 한다. 언젠가 내 진심을 알아주길, 언젠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우유도 계란도 받아들여주길. 그 날이 온다면...제발 와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