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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농면허 초보운전자를 일으킨 문장 "의미가 있다."

운전, 다시 해보려고요 ㅠㅠ

by 임수정

최근 몇 년 사이 내 인생 최대 난제는 바로 '운전'이다. 수능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떠밀려 1종 보통 면허를 땄지만 10년도 넘게 장농에 묵혀두기만 했고, 결혼 전 크게 결심하고 아빠 차로 연수를 받았지만 이내 며칠 만에 시들해졌다. 사실 시들해졌다기 보다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이제는 극복하자 싶어 몇 번 운전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거의 1운전 1사고 꼴로 이슈가 발생했다. 주차장에 멀쩡히 주차되어 있는 차에 가서 박기도 하고, 주차장 입구 기둥에 옆면을 긁기도 했다. 오토 제동 시스템이 없었다면 차선 변경하다가 앞차를 틀림없이 박았을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주위에서 크게 나무라진 않았지만, 오히려 계속 해야 는다며 응원을 해줬지만 운전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심장이 뛰고 뒷목과 어깨가 뻣뻣해지며 식은땀이 났다.


한 번은 여동생이 갑자기 심각한 디스크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아이가 둘인 동생,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픽업해 와야 하는데 시간이 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어찌저찌 초행길인 응급실까지 일단 동생을 만나러 갔고, 결국 내 실력으로 픽업은 무리다 싶어 일단 퇴원시켜 친정집에 가기로 했다. 허리가 아파 조수석 의자를 끝까지 젖히고 누워있던 동생은 덜덜 떨며 운전하는 나를 보더니 "그냥 내가 할까? 어떻게든 내가 해볼까?"라며 불안한 눈빛으로 의자를 점점 일으켜 세웠다. 디스크 통증도 잊게 만들만큼 불안한 내 운전실력...결국 그 날 아이들 픽업은 동생과 친정엄마가 택시로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주차장 기둥에 차를 긁었다.


그 날 이후로 1년이 넘게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시간도 기회도 많았지만 정말로,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밤에 자기 전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도 나도 단점을 고치지 못하고 헤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만남은 의미가 있다." 뜬금 없이 연애 웹툰을 보다가 "의미가 있다"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헤어질 지도 모르는 만남일지라도 의미가 있고,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지. 내가 운전을 하고 나가서 주차된 차를 박은 날도, 긁고 들어온 날도, 부딪칠 뻔한 날도 다 나름대로 새로 깨달은 바가 있었던 날들이었지.


처음 주차돼있던 차를 박은 날, 덜덜 떨며 주차장 관리하시는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차주에게 연락을 했다. 난생 처음 보험처리라는 것을 위해 보험사에 전화를 해 사고접수를 했고,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며칠 뒤, 상대 차주에게서 전화가 왔고 의외의 말을 들었다. "차가 딱히 손상된 부분을 모를 정도로 경미하니 보험처리 취소하고 그냥 넘어가자"는 것. 이어 "양심적으로 연락해주어서 그냥 넘어가겠다"고 덧붙이시기까지...아직 세상이 훈훈하구나 싶어 또 연신 감사인사를 드렸고 치킨 쿠폰을 보내드렸다. 그 날 이후 그 주차장 관리인 아저씨는 내 차가 들어오면 달려와서 내리라고 하시며 대신 주차를 해주셨다.(ㅠㅠ) 주차장 관리 아저씨께는 종종 음료수를 사다드리며 감사인사를 드렸다.


앞차를 박을뻔한 날, 그 날은 옆 차선에 택시가 달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택시가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하지 않는 상태로 애매하게 계속 같이 달려서 초보운전자인 나는 마음이 초조해지고 말았다. 자꾸 택시를 곁눈질하며 달리던 순간, 차가 경고음을 내며 급제동했고 그제서야 나는 내 앞 차가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선 변경에 신경 쓰느라 시야가 짧아져 저 멀리 신호가 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옆차선만 자꾸 보고 있었던 것. 나는 그 날 그 한 번의 사건으로 수 백만원(?)에 이르는 자동차 안전 옵션에 지불한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야가 좀 길어지고 넓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다만 의식하고자 한다.


기둥에 긁은 날은...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엄청난 경사의 언덕이었고 언덕 중간에 위치한 교회 주차장에 비용을 지불하며 사용 중이었다. 언덕 중간에 있는 주차장으로 쏙 들어가기 위해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우회전을 시도했는데, 너무 벽에 붙어서 돌아서인지 차가 벽에 닿는 느낌과 동시에 또 경고음을 듣게 되었다. 하..어떻게 해야 하나...또 사고를 쳤구나...너무 막막했지만 여기서 차를 그대로 두지 않고 나름 움직이며 빠져나오는 2차 실수를 더하게 되었다. 미리 사다둔 자동차 흠집 제거 타올(?)로 응급처치를 해보았으나 워낙 광범위하게 긁혀 있어 결국 몇 달 뒤 공업사에서 5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흔적을 없앴다. 이 날 이후 왜 자꾸 아빠가 평소 "크게 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오늘 1년여만에 남편을 옆에 태우고 운전을 시도해 보았다. 뒷좌석에서 아이를 보며 나름 간접 운전연습을 한답시고 앞을 째려보곤 했지만, 역시나 운전석에 앉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3km남짓 거리를 거의 20분이 걸려서 다녀왔고, 나도 남편도 긴장 때문에 녹초가 되었다. 다행히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있어서인지 뒷차들은 빵빵거리지 않고 조용히 나를 추월해 지나가 주었다. 예전에 살던 서울 도심과 달리 경기도로 이사오니 도로에 차도 적고 길도 조금은 넓게 느껴졌다. 오늘은 무사고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오롯이 경험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운전실력이라던데, 벼락치기가 몸에 배어 있는 성격 급한 나는 어떻게 해야 빨리 익숙해질까만을 생각했었다. 한 번 한 번이 다 의미가 있는 시도인데,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해서 괜히 운전한 날이라고 성공하지 못한 날이라고 헛된 시도였다고 치부하며 의기소침했었다.


결론은, 도로 위를 달리는 모든 운전자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바다. 어찌 이렇게 매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기분이 들고, 마치 정글에서 야생동물이 언제 튀어나올까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것 같은 일을 그렇게들 쉽고 익숙하게 해내시는지. 과연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지...운전 공포증을 극복하는 그 날까지 의미 있는 하루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수 밖에 없겠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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