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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Sep 26. 2021

대학병원에서 죽지 않으려면 젝스트를 챙겨라

병원 내에서 겪은 아나필락시스, 충격적인 대학병원 시스템의 실체

심한 알러지로 인해 아나필락시스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있다. 나 또한 그 중 한 사람이고, 매사에 모든 음식과 식재료의 성분표를 확인하며 만전을 기해도 1년에 한 두 번 정도 내 실수로 혹은 타인의 부주의로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겪는다. 정신 없이 젝스트(에피네프린 주사)를 아이 허벅지에 찌르고 응급실에 들어가 퉁퉁 부은 아이의 얼굴과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회복한 아이와 응급실을 걸어나올 때면 또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을 웃는다.



이번 아나필락시스는 다른 때와 달랐다. 발생한 장소가 무려 대학병원이었고, 원인은 신참도 아닌 무려 소아과 과장이라는 사람이 처방한 약 때문이었으며, 코와 코 점막이 부어오르고 숨소리와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아이에게 주사를 꽂은 것은 의료진이 아닌 바로 나였다.


사건의 발단은 장염이었다. 추석 연휴 바로 전날인 금요일, 나는 급성 장염 증세가 시작되었고 연휴 내내 밥은커녕 죽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3일 정도 지나자 죽을 넘길 수 있게 되었더니, 이번에는 밤에 자던 아이가 갑자기 왈칵 토를 했다. 눈빛이 영 이상해 열을 재어보니 38.2도, 응급실에 전화를 돌려도 5~6시간 대기해야 한다는 말에 밤새 해열제를 교차복용 시키며 열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다음 날, 추석 당일임에도 문을 연 소아과가 있다기에 방문했더니 혹시나 해서 시도한 염증검사에서 수치가 70이 나왔다. 8 정도가 정상이라던데, 빨리 응급실에 가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어느 응급실로 갈까 고민하다가 전화했을 때 상대적으로 친절했던 S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밖에서 두시간을 꼬박 물 한 모금 먹이지 못한 채 기다렸다가 입실했다.


열이 나는 아이인지라 격리실에 들어가야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를 하기 위해 아이 손등을 찔렀다. 들어와 묻는 모든 의료진들에게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는지 등과 알레르기가 있다고, 아나필락시스가 올 정도로 심하다고 반복해 이야기해야 했다.  아프다고,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며 한참 기다리자 긴 머리의 중년으로 보이는 여의사가 들어와 "지욱이가 염증수치가 생각보다 높지 않아서~"라고 말을 꺼냈다. 내 아이 이름은 승현이다. "제 아이 이름은 승현인데요"라고 말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 없이 나가버렸다.


한참 후 다시 들어온 의사는 아이를 진찰했다. 지겹게 반복한 증상과 알레르기에 대한 이야기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장염으로 보이니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입원을 결정했다. 아이의 코로나 검사도 했고, 음성이 나오기 전까지는 격리병동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병동에 올라가기 직전, 간호사가 물약과 가루약을 들고와 이것을 먹이면 된다고 했다. 아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으니 직접 가루약을 물약에 섞어주었다. 고맙다며 그 약을 먹였는데...


격리병동에 올라가 수액을 꽂고 누워있던 아이가 "엄마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요"라며 자꾸 몸을 긁었다. 아이가 울어서 열이올라 그런가 싶었는데, 겨드랑이를 보니 작은 두드러기가 보인다. 황급히 바지를 내리자 사타구니 부위의 두드러기가 보였다. 이건 위험하다. 호출 버튼을 누르고 "아이가 두드러기가 났다. 빨리 들어와달라"고 말하자 간호사가 들어오는데, 밖에서 방호복을 입고 소독을 하고 들어와야 하니 시간이 꽤 걸렸다.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으니 기다리라고 하고 나갔다.


아이의 증상이 본격화됐다. 코 옆 부분이 딱딱하게 부풀어오르며 붓는 것이 보였고, 코가 막히는 듯한 숨소리가 나며 목이 쉬기 시작했다. 울기 시작하고 귀가 부어오르는 것이 보였으며 얼굴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이대로 두면 점막 부종 때문에 목이 부을 것이고 숨을 쉴 수 없게 될 것이 뻔했다. 호출버튼을 눌러 여러 차례 말해도 의사선생님이 오고있다는 말뿐이었다. 미칠 것 같아 "이건 아나필락시스에요!빨리오셔야돼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간호사가 다급히 뛰어들어왔다. 아이가 놀라면 안되기에 크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미칠 듯한 상황. 혹시나 지금 꽂혀있는 수액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 "수액이 문제일 수 있으니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수액은 문제될 성분이 없다며 빼주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만약이라도 저게 문제라면 계속 아이 몸속에 들어가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 날 것이 아닌가 싶어 말 그대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저한테 젝스트 있는데 제가 직접 놓을까요?"라고 묻자 간호사가 갈등하더니 "어머님께서 지금 놓으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도 의사와 에피네프린은 오지 않았다. 결국 가방 속에 들고다니던 젝스트를 꺼냈고, 아이 허벅지에 찔렀다. 찢어질듯한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조금씩 증상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이후 의사가 들어오고 뒤늦게 에피네프린이 도착했다. 의사와 아나필락시스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따. 아이가 먹은것이 없느냐? 없었다. 응급실 들어오기 전부터 물 한 모금 못 먹은 아이였으니 최소 4시간 이상 굶은 상태였다. 혹시 낮에 먹였다는 아이스크림이나 젤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럴리가 없다고, 매일 한 두개씩 꼭 먹는 것들이라고 대답했다. 정신이 없던 나는 응급실에서 먹은 물약이 나중에서야 기억이 났다. 아이가 먹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의사에게 이야기하자 "아이가 응급실에서 약을 먹었어요?"라고 물었다. 기가찼다. "응급실에서 약 처방한거 기록에 안나와있나요?"라고 묻자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해준 약 이름은 람노스였다. 내가 알러지 관련 피드만 올리는 SNS가 있는데, 그곳에 상황을 알리자 그 약은 밀크추출물 기반의 약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아이가 응급실에 들어온 이후부터 최소 3명이상의 의사에게 우유 계란 알러지가 있으며 아나필락시스가 올 정도로 심하다고 누차 이야기를 했는데, 우유성분이 들어간 정장제를 아무 생각 없이 처방한 것이다.


아이가 다니던 다른 대학병원, 소아과에서는 의사가 오히려 먼저 "우유 알러지가 있으니 정장제는 빼주겠다", "아이가 우유알러지가 심하니 비오플과 같은 정장제는 빼고 처방해달라고 이야기하라"고 알려줬었기에, 동네 병원도 아닌 대학병원에서 설마 우유 아나필락시스 아이에게 우유성분이 들어간 약을 처방해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물약 가루약이 무슨약인지 물어볼걸, 먹이지 말걸...뒤늦은 후회에 가슴을 쳤다.


당신이 알러지가 있으며 아나필락시스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학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꼭 젝스트를 소지할 것을 권한다. 어떤 의료진들은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어도 이게 아나필락시스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인지하더라도 그들이 약국에 에피네프린을 오더하고, 그 약이 병실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며 당신의 기도는 이미 부어올라 막혀가고 있을 것이다. 의사를 불렀다고 해도 오고 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 생각보다 신속하게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살 수 있는 길은 당신 스스로가, 혹은 보호자가 소지하고 있던 젝스트를 빠르게 찔러 넣는 것 뿐이다.


젝스트 주사 후 가라앉았던 아이의 증상은 다시 재발했다. 자다가 깬 아이는 짜증을 내며 다시 몸을 긁었고, 코 옆에 부어오르는 것이 또 다시 보였다. 이번엔 호출벨을 누르자 아까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간호사와 의사가 도착했고, 즉시 추가로 항히스타민제를 주사했으며 스테로이드도 추가했다. 아이의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며 주렁주렁 여러 줄이 달린 기계들을 가져와 아이 몸에 부착했고, 실시간으로 산소포화도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나필락시스 사고는 마무리되었다.


새벽이 되어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고, 유일하게 비어 있는 1인실로 옮겨 장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총 2박3일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방에는 응급실에서 그 문제의 람노스를 처방했던 의사와 높은 직급의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 의사가 꺼낸 첫 마디는 "아이가 약을 먹고 두드러기가 났어요?"였다.


몸 속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만 옆에 없었다면 이성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두드러기라뇨? 아나필락시스였어요"라고 말하자 당황한 표정이 스쳤다. 응급실에서 아이의 이름을 잘못부르며 들어왔을 때의 그 표정이었다. 아나필락시스라는 중대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그것이 자신이 처방한 약으로 인함이었음에도 그 사실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소아과 과장이라고 했다. 소아과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제대로 듣지를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일을 축소시키고 싶어 그렇게 질문을 꺼낸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냐며, 자신은 계란알러지만 들었고 우유알러지는 못 들었다고 했다. 기가찼다. 그렇다면 그녀 이전에 들어온 모든 의료진들이 묻고 적어간 것들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은 서로 기록을 하나도 공유하지 않고 환자에게 같은질문을 왜 반복적으로 묻는 것일까. 최종 처방하는 사람은 그 이전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결국 하나도 보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대학병원이라는 곳의 시스템이 이런식이었구나, 겉으로 엄청 체계적이고 철저히 관리하는 척 하지만 결국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인가.


"람노스가 원래 그런 약이 아닌데 리뉴얼되면서 맛을 좋게 하려고 성분을 추가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걸 보호자가 알아야하는가? 그것이 당신이 부주의하게,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처방한 사실에 대해 약간이라도 면죄부가 된다거나, 이해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지금 화가 너무 많이 나 있으며 이 일을 어떻게 배상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상의하고 연락 드리겠다며 시스템이 문제라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나갔다.


모든 정산을 마치고 퇴원하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의사가 아닌 아까 들어왔던 간호사가 따라나왔다. "어머님께서 저희가 어떻게 해드리길 원하시냐"고 물었다. "금전적인 배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실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돈을 요구할까봐 무서웠고, 그 간호사를 대신 보내 나를 떠보려 하고 있는가 싶었다. 감성적인 단어들로 나를 달래려 들었다. 어머님이 힘드시겠다는 등, 아이는 외동이냐는 등, 병원에 믿고 오셨을텐데 이렇게 돼서 죄송하며 자기들이 안심하고 다니실 수 있게끔 시스템을 개선하고 알려드리겠다는 등....퇴원을 한 것은 목요일이었고, 지금은 일요일이다.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으며 내일 바로 그 여의사의 외래 진료가 예약되어 있다.


과연 이 일이 내게 왜 일어났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배상은 무엇일까. 변호사와 상담을 받아볼까. 왜 모든 상황을 녹음하지 않았을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일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결국 답은 하나다. 내 아이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병원, 그리고 안심하고 내보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개인이 아무리 외쳐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소수의 입장에 선 개인은 먼지와도 같이 연약하다. 하지만 병원 측과 뭔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규모가 있고 지역사회 내에서 영향력도 있는 S병원이 경기도와 연합해 도내 모든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고용된 교사를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에게 아나필락시스 대응 교육과 젝스트 사용방법을 교육시켜 주는 것. 내 아이가 어떤 교육기관을 가든 그곳의 모든 선생님과 어른들이 아나필락시스 상황 발생 시 문제 없이 젝스트를 사용해 아이의 목숨을 지켜주는 것."


월요일에 내가 어떤 말을 듣게 될지 나는 모른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할지, 없던 일처럼 묻고 갈지, 내가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게 될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내 목표는 하나다. 내 아이, 그리고 내 아이처럼 알러지가 있고 아나필락시스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 이 일이 내게 일어난 것도, 결국 이 메시지를 병원에 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그래야 아이와 내가 겪은 고통이 조금이라도 가치 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부디 전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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