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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Nov 22. 2021

아나필락시스 아기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나필락시스를 모르는 모든 분들께 드리고픈 긴 이야기


안녕하세요.

우유, 계란 아나필락시스 5세 남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 임수정입니다.

아나필락시스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그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어려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어 글을 씁니다.

(저희 아이가 멀쩡할 때의 모습입니다.)


저희 아이는 11개월 무렵 처음으로 생우유 한 모금을 마셨다가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통해 우유, 계란 알러지 수치가 높아 차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5세인 지금까지도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첫 아나필락시스는 두유를 먹고 발병했습니다. 여행을 갔다가 오는 길에 두유를 샀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먹였는데, 두유에 우유 성분이 들어있었습니다. 두유니까 당연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우유 성분이 들어간 두유 제품이 꽤 있다는 것을 이 때 알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깨알 같이 작은 전성분을 일일이 읽어야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구토, 쌕쌕거리는 숨소리, 기침, 얼굴과 코, 목의 부종 등으로 인해 재빨리 응급실에 가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보석바 아나필락시스로 입술이 붓고 온몸이 붉어지고 두드러기가 올라온 모습. 이것도 많이 진정된 모습입니다.)



이외에도 아이스크림(보석바) 반개를 먹었다가 아나필락시스가 와서 경찰차를 타고 응급실에 간 적도 있고, 우유가 안들어갔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망고스무디를 먹었다가 그 안에 들어있던 연유 시럽으로 인해 아나필락시스가 와서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있습니다. 우유와 연유는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죠. 보석바 역시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에 우유가 적혀 있지 않았기에 무심코 먹였지만, 전성분에 떡하니 혼합분유가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을 놓친 제 잘못도 있겠지만,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에 따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이런 실수와 사고는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 당시 아나필락시스를 겪었던 모습. 대처가 늦어져 제가 직접 젝스트를 주사했습니다)


병원에서 아나필락시스를 겪기도 했습니다. 장염으로 염증수치가 높아져 용인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3시간을 넘게 기다려 겨우 들어갔는데, 입원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코로나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격리병동에 들어가 있을 때 아나필락시스가 왔습니다. 아이가 몸이 가렵다며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실시간으로 코와 입이 붓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격리병동이라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챙겨입고 들어오느라 시간이 너무나 지체되었습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 당시 아나필락시스를 겪었던 모습. 대처가 늦어져 제가 직접 젝스트를 주사했습니다)

새벽시간이라 당직 의사는 불러도 한참동안 오지 않았고, 1분1초가 급박한 상황이라 제가 휴대하고 있던 젝스트(에피네프린 주사)를 직접 주사했습니다. 이 때 아나필락시스의 원인은 응급실에서 처방받아 먹였던 정장제(람노스)였습니다. 우유 아나필락시스 아이라고 말을 했음에도 유당성분이 들어간 약을 처방했고, 아나필락시스 상황에도 의사가 오고 있다는 말 뿐 어떤 조치도 해주지 못해 만약 제가 젝스트를 주사하지 않았다면 또 큰일이 날 뻔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당시 처방했던 의사는 “아나필락시스 아이라도 유당성분에까지 이렇게 반응이 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우유 알레르기와 유당 알레르기는 다르다”,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등의 말을 해 아나필락시스에 대한 인식이 심지어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라는 한탄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나필락시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기관을 보낼 때, 그리고 연도가 바뀌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때 극도로 긴장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입소를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또 응급상황 발생 시 선생님이 어떻게 대처해주시느냐에 따라 그야말로 아이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입소할 때 수 없이 부탁을 드리고, 편지를 드리며 간절히 읍소를 했습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식단표를 매일 체크하고, 조금이라도 우유나 계란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음식이 나오는 날엔 무조건 도시락을 싸서 보냅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의 간식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보냅니다. 혹시나 주의했음에도,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니 만에 하나 사고가 날까봐서입니다. 응급상황에 내가 늦게 도착하면 아이를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전투태세로 대기합니다.

(약 15개월 무렵, 국공립 어린이집 학예회날, 바쁜 선생님들의 케어 실수로 우유 한모금을 마셔 퉁퉁 부었던 모습)



11개월 무렵부터 다녔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행사가 많았습니다. 선생님들도 그런 날엔 당연히 바빴습니다. 학예회날, 아이가 실수로 친구의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며 연락이 와 주사기를 들고 미친듯이 뛰어갔었습니다. 아이의 온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저는 병원으로 달려가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인 뒤 약간이나마 가라앉아 다시 학예회장으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사진에 아이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다행히 호흡곤란까진 가지 않았었지만, 알레르기에 대한 기관의 케어는 이처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수준이 정말로 아닙니다. 특히나 신뢰할 수 있다는 국공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외에도 수차례 알러지 때문에 뛰어가야 했습니다.


현재는 이사를 와서 사립 어린이집에 다닙니다. 선생님께 위급 시 약과 젝스트를 사용해달라고 말씀드리고 가방 앞주머니에 늘 넣어서 다닙니다. 하지만 저는 위급상황 시 선생님이 젝스트를 사용하실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내 자식에게 젝스트를 실제로 주사하기까지 저도 오랜 시간과 용기와 연습이 필요했고, 의료진이 아닌 이상 누군가에게 주사를 놓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롯이 저의 몫이고, 때문에 저는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은 다닐 수가 없습니다.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위해 늘 대기해야 하는 것이 아나필락시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최선입니다. 비록 그것이 수입이 적고, 기존의 커리어를 많이 내려놓아야 하는 것임에도 아이의 생명과 내 커리어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가장 안쓰러운 순간은 길을 가다 마주친 어른들이나 친구 어머니들이 “이거 먹어라”하며 간식을 주실 때입니다. 주신 마음을 “알레르기 있어서 못 먹어요”라며 거절하기에도 민망스럽고, 너무나 먹고 싶어하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도 전성분에 우유나 계란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이건 먹지 말아야겠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도 곤욕스럽고, 실망한 얼굴로 “왜 우유가 들어간걸 줬어”, “왜 내가 못먹는걸 준거야”라며 우는 아이를 보는 것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이와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자신과 놀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어린이집 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도통 물어도 이유를 말하지 않더니, 상담 선생님과 놀이상담 시간에 점토로 우유와 계란을 만들어 먹는 놀이를 했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혹시나 싶어 장난이라도, 장난감이라도 우유나 계란이 들어간 것은 절대 사주지 않고 장난으로라도 먹는 척조차 안된다고 말해왔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아이는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아이가 자신은 친구들과 다르고, 우유랑 계란을 먹지 못해 친구들이 나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상담 결과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그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슬퍼할 것을 알기에, 제가 물었을 때는 입을 꾹 다물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마음이 또 찢어졌습니다.


매일 도시락을 싸가 아이들과 다른 메뉴를 먹는 것도 아이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고, 아이가 “마음 속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아”라는 표현까지 할 정도로 상처를 많이 입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지금은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식단이 나오는 날만 아이를 온전히 보내고, 그렇지 않은 날엔 점심시간 전에 하원을 하거나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일도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가장 큰 바람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알레르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린이집, 유치원까지는 엄마의 보호 아래 있고 엄마가 많은 개입이 가능하지만, 학교에 가면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급식을 먹기 시작하면 혼자서만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것이 더욱 상처가 될 수 있고, 친구들과 무심코 간식을 나눠 먹다가 응급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단표에 기재된 것만으로는 식재료에 우유성분이 들어갔는지 여부를 완벽히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현재 어린이집 식단표에도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가 기재되어 있지만, 표시가 없던 오리고기 소스에 우유 성분이 들어가 있어 아이가 목이 따갑다고 호소한 적도 있었고 당연히 우유, 계란이 들어갈 메뉴임에도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사실상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굉장히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식으로 대충 표기되고 있습니다.

(보석바의 전성분표.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가 아예 없지만, 원재료 및 함량에 혼합분유와 유청분말이 들어있습니다. 이 제품 반 개를 먹고 심한 아나필락시스를 겪었습니다.)



아이가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지만, 한글을 읽는다 해도 우유, 계란이 아닌 혼합분유나 탈지분유, 알류, 난백, 난황, 난백분말, 유당, 유청분말 등 우유나 계란성분의 또 다른 말들을 모두 파악하고 스스로 100% 걸러낼 수 있을까요? 


저희 아들의 치사량은 우유 0.7CC입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강북삼성병원을 다니며 면역치료를 할 당시, 매일 집에서 조금씩 양을 늘려가며 먹여야 했습니다. 이 면역치료 때문에 응급실로 뛰어가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1CC도 아닌 0.1CC단위, 즉 티스푼 한 스푼도 채 되지 않는 양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먹여야 했고, 그마저도 컨디션에 따라 알러지 반응이 와서 응급실에 뛰어가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위험했습니다. 때문에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이 말은 또한 음식에 우유 성분이 0.7CC만 포함되어 있어도 제 아이는 응급실에 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과자도, 빵도, 요구르트도, 우유성분이 들어간 주스(크니쁘니, 뽀로로주스 등), 아이스크림도, 심지어 계란성분이 약간 들어간 만두도, 소스에 약간이라도 우유성분이 들어갈 수 있는 오리고기나 불고기 등도 모두 차단해야 합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정말 제한적이고, 또 새로운 메뉴나 제품을 시도할 때마다 알러지 반응, 아나필락시스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 번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겪고 나면 저는 한동안 심각한 트라우마와 노이로제로 심지어 생수까지 전성분을 강박적으로 세 번 네 번 읽곤 합니다. 아이는 어떨까요.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기침이 쉴 새 없이 나고 침을 삼킬 수 없어 줄줄 흐르며, 병원에 실려가 수 차례 주사바늘에 찔리고 수 시간을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두려울까요. 

 

며칠 전엔 아이가 자다 깨서 울더니 “병원에서 길을 잃는 꿈을 꿨다”고 했습니다. 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겪었던 일이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저 역시 가장 믿을 수 있다 여겼던 의료기관에서 겪은 일이라 충격이 컸고, 죄송하다고 하는 당시 의사선생님께 “부디 아나필락시스 인식에 대한 교육을 용인시와 손잡고 실시해달라,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비롯해 모든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교직원 및 임직원들이 아나필락시스에 대해 알고 젝스트 사용을 실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습니다. 난색을 표하더군요.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낼까도 생각했습니다. 저희 이웃집에는 국제학교 선생님이 살고 계신데, 아이 사정을 듣더니 “서양에서는 아나필락시스, 알러지가 흔하기 때문에 모든 교직원이 에피펜(에피네프린 주사, 젝스트) 사용법을 의무적으로, 정기적으로 교육받고 있다”며 아이의 안전을 위해 국제학교 진학을 고려해보라고 하더군요. 물론 저희 아이 한 명은 어떻게든 거기 진학해 안전하게 다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경우라면요? 한국 학교는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사실 아나필락시스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일들을 쓰자면 끝이 없고, 이 편지를 쓰면서도 저는 아프고 힘든 기억들과 사진들을 다시 마주해야 해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아나필락시스 환자들과,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어려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확인이 필요하시거나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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