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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Feb 17. 2022

구몬을 끊었습니다.

욕심 없는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ㅋㅋ

안녕하세요.

지난 번 "아나필락시스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라는 글로 수많은 분들께 위로와 격려의 댓글을 받았던 엄마입니다. 글 하나 쓰느라 참 많은 것들이 소진되어서 몇 달이나 지난 지금에야 또 다른 글을 쓰러 왔네요. 댓글로,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커서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근황에 대해 잠깐 적어볼까 합니다. 최근에 아이 구몬을 끊었습니다. 그만두었다는 뜻이죠. 


저는 어릴 때 참 빠른 아이였다고 합니다. 한글도 스스로 빨리 깨우쳤다고 하고요. 그래서일까 내 아이도 빨리 한글을 깨우쳤으면 좋겠다는...아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몬 행사 부스가 아파트 앞에 차려졌을 때 아이 손을 잡고 가서 테스트도 해보고, 아이 의사를 물어보고 시작을 했었죠.


하지만 좋다고 했던 아이는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난이도가 올라가자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더군요. 선생님 말로는 자존심이 센 아이라서 자기가 모르는 것이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몇 주 지켜보고, 교재도 바꿔보다가 그냥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것 같긴 합니다. ㅎㅎ 관심이 전혀 없네요.


아이가 한글을 익히고 나면, 한글을 읽을 수 있게되면 전성분 표도 읽을 수 있고 우유, 계란 글자도 읽을 수 있게 되겠죠. 스스로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이구나 피할 수 있게 되어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가봅니다.


저는 제가 엄마가 되면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엄마, 내가 원하는 길을 강요하기 보단 아이를 잘 관찰해서 원하는 것을 캐치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엄마 노릇은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기보다, '당연히 그런거 아냐'라는 가면을 쓴 내 안의 욕심을 꾹 누르고 내려놓고 지켜봐주어야 하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저처럼 성격 급한 엄마에게는요.


요즘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가정보육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도시락 싸는 일도 줄었고, 집에서 음식을 관리하며 먹이다 보니 알러지 걱정도 한 시름 놓고 조금 편안하게 지냅니다. 물론 언제 실수가 발생할지 모르니 완전히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겠죠. 항상 이렇게 편안하고 해이한 날들 가운데 사고가 발생했었으니까요. 그래도 지난 번 병원에서 크게 아나필락시스 사고를 겪었을 때 비해 제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아이도 하기 싫은 공부 안하고 집에서 실컷 놀 수 있으니 눈에 띄게 밝아지고 깨발랄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날들 가운데 문득 너무 무료하단 생각, 내가 이렇게 편안한 날을 보내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 또 스물스물 올라오더라구요. 참 이상한 일이죠. 편안한 날은 그냥 편안하게 지내면 될 것 같은데,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주어진 걱정거리가 없어도 스스로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어떤 때는 마치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시간이 꽤 길게 이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땐 '납작 엎드리고 기어가자. 기어가다 보면 언젠간 이 터널이 끝날거야' 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을 한껏 웅크린 채 그 시기를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터널 속에서 앞도 안 보이는데 억지로 일어서고 뛰어간다면 너무 위험하겠죠. 힘든 날들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 때의 저처럼 그냥 한껏 웅크리고, 걸으려 하지 말고 조금씩 기어간다는 생각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를 팔로우해주시고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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