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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May 23. 2022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때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아니 사실은 결혼 전부터 나는 종종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방 내 침대 위에 누워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어쩐지 불편하고, 돌아갈 어딘가가 있는 듯 100%의 안온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옆에 누워 바라볼 때면 잠시 모든 생각이 사라지지만, 지치고 힘든 날이면 낮이고 밤이고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내 집에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엄마가 보고싶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럼 지금 전화를 하고 날을 잡아 찾아가면 될텐데,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싶은 엄마는 지금 내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친정집에 계신 엄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왜일까. 내가 가고 싶은 집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어와야 할 의무, 청소하고 누군가의 식사를 준비해둬야 할 의무, 남은 대출금을 헤아려야 할 의무가 없는 집이다. 내가 보고 싶은 엄마는 누구일까. 내가 부양해야 할 엄마, 늙어버린 엄마가 아니라 어린 시절 무엇이든 해결해주고,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던 그런 엄마인 것 같다. 내가 100% 의지할 수 있는 존재,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존재. 6살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머니 품에서 자란 나에게는 어쩌면 엄마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그런 존재에 가까웠던 것 같다.


엄마는 성인이 되면 월세를 내든 결혼을 해서 독립을 하든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된 시점부터 내 방은 빨리 독립해 떠나야 할 공간이 되었다. 내 취향대로 꾸미기 위해 투자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떠나야 할 곳이고, 내 집이 아니니까.


결혼을 하자 집은 쉬는 공간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공간이 되었다. 청소도 해야 하고, 저녁도 준비해야 하고, 때마다 수리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내 엄마는 건강은 괜찮은지, 퇴직 후엔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대상이 되었다. 



어른이 된 나에게 너는 기대기만 하라고 말해줄 사람은 없다. 신나게 놀고 들어와서 씻고 푹 자기만 하면 되던 집은 이제 없다. 그 대신에 퇴근해 들어와 며칠째 아직 잘라놓지 않은 수박을 보고는 넌 집에서 뭘했냐고 묻고, 코로나에 걸려 엄마네 집에 가있을까? 우스갯소리를 하면 애는 누가 보느냐고 묻는 남편이 있다. 제 맘에 들게 못놀아줬다며 떠나버리겠다고, 하늘나라에 가버리겠다며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할 떼를 쓰는 여섯 살 아들이 있다.


집에 앉아서 이 글을 쓰지만 나는 집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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