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럼 비건 모닝빵 말고 그냥 모닝빵 먹을 수 있는거야?
나는 어릴 때 우유를 참 많이 마셨다. 목이 말라도 물 대신 찾을 정도로 하루 1000ml는 거뜬히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유 알러지가 있는 내 아이는 우유를 마실 수 없다. 우유 마시는 연습을 해야 마실수 있게 될까 말까다.
며칠 전 대학병원에 오랜만에 가서 알러지 검사를 했다. 선생님마다 알러지에 대한 대처 방식이 다르다. 어떤 병원에서는 면역치료를 하지 않고 무조건 철저히 차단하라고 하고, 어떤 선생님은 알러지 반응이 오지 않는 양을 조금씩 매일 먹이면서 역치를 높여가는 면역치료를 적극 진행한다. 이번에 찾은 선생님은 면역치료를 적극 권하는 분이고 알러지 엄마들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자주 언급되는 분이다. 이 면역치료가 바로 아이가 말하는 '우유 먹는 연습'이다.
아이는 알러지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를 받으며 많이 울었다. 선생님이 "우유 먼저 먹을래? 계란 먼저 먹을래? 생각해와~"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이는 주사바늘이 무섭고 병원이 무서운지 "나는 지금 이대로도 좋아"라고 말했다. 나 역시 아이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면역치료를 할 생각은 없다. 이미 해 봤기 때문이다.
아이가 두 돌 무렵 첫 아나필락시스가 온 뒤 서울의 대형병원을 다니면서 면역치료를 해보자는 선생님의 권유에 우유 면역치료를 시도했었다. 면역치료를 위해서는 경구유발테스트를 먼저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양까지 먹었을 때 알러지 반응이 오는지 조금씩 먹여보며 지켜보는 것이다. 아이는 의외로 잘 버틴다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테스트를 중단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뒤늦게 반응이 왔다. 아이 얼굴이 터질듯이 뜨겁고, 검붉은 토마토처럼 변했다. 당황해서 병원에 전화를 했지만 대형병원 특성상 콜센터에서 소아과로, 그리고 다시 담당 간호사, 의사에 이르기까지 연결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겨우 간호사가 의사선생님께 물어보겠다고 하더니 건네준 대답은 "항히스타민제를 더 먹이라"였다.
이 때부터 못미덥기 시작했다. 알러지를 치료하는 의사라 하더라도, 알러지를 직접 가지고 있거나 아이가 알러지가 있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겠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이미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한 상황에서 실려온 환자에게 어느 정도의 약물을 주사해야 하고 어떤 약을 쓰는지에 대한 지식이 있을 뿐, 미묘하게 사람마다 또 매번 상황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아나필락시스의 조짐과 양상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때문에 오히려 알러지 아이를 둔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더 많이 얻기도 한다.
이후 면역치료를 진행하면서 아이는 0.7cc까지 우유를 먹어 보았다. 티스푼 1스푼도 안 되는 양이다. 미세하게 조금씩 늘려가 도달한 지점이었다. 조금씩 늘려가며 먹는게 뭐 어렵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난 번엔 먹여도 괜찮았던 양인데 이번에는 갑자기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의 몸이란 자로 잰듯 딱딱 떨어지게 반응하지 않는다. 면역치료 때문에 알러지 반응이 와서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몇 번이다.
또 우유알러지가 있는 아이들은 아토피도 함께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면역치료를 하는 동안 이 아토피 증상은 필연적으로 더욱 악화된다. 가려움도 심해지고 몸 여기저기 딱지가 생기며 긁은 손톱 자국, 핏자국이 가실 날이 없다.
아이가 우유를 먹기 싫어하는 상황에서 치료를 위해 억지로 먹이는 것도 너무나 못할 짓이다. 이 우유가 내 아이 몸에는 독으로 받아들여지는 물질인데 이걸 조금씩, 억지로, 매일 입에 넣어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찢어지고 또 찢어진다. 아이가 결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잘 견뎌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만한 이해심과 인내심을 가진 아이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리스크를 안고 진행해야 하는 것이 면역치료다.
그 때는 어렸지만, 지금은 어엿한 6살이 되었다. "나는 이대로도 괜찮아"하던 아이가 오늘 아침 갑자기 "나 우유 먹는 연습 하면 나중에 비건 모닝빵 말고 그냥 모닝빵도 먹을 수 있어? 우와 신난다!"라고 말했다. 어제 놀이터에서 동네 누나가 먹던 모닝빵이 은근히 먹고 싶었었나보다. 매번 냉동실에 각종 비건빵들을 쟁여두지만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집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꾹 참고 다른 간식을 먹으며 넘기지만, 내심 마음 속에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을 것이다.
면역치료를 다시 검토하면서 내가 세운 원칙은 단 한 가지다. 아이가 원한다면, 적극 참여할 의지가 있다면 그 때 시도할 것. 첫 면역치료가 힘들었던 것은 아이가 아직 싫다, 좋다를 판단할 수 없을만큼 어렸기 때문이었고, 아이의 면역체계도 어린 만큼 더욱 미성숙해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젠 아이의 몸도, 마음도 좀 더 성숙해졌고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다시 한 번 상의해보려고 한다.
면역치료를 한다고 무조건 관용이 생기고 무조건 알러지가 없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면역치료로 우유 먹는 양을 겨우겨우 늘려놨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케이스도 보았다. 100% 없어진다는 확신이 있더라도 힘든 치료인데, 확신이 없음에도 일단 시도해 본다는 것은 더 많은 망설임이 따르고 훗날 큰 후회로 돌아올 수도 있다. 엄마 노릇이 어려운 것은 이런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하고, 내 선택이 아이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중압감과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