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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Oct 17. 2022

멘탈이 한 없이 약해질 때

검사결과는 혼자만 들으러 가는걸로

지난 주 수요일, 2년만에 한 아이의 알러지 검사 결과가 나왔다. 2년 동안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주 소량에도 종종 혀가 따갑다거나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등 반응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졌을것 같지 않아서, 더 심해졌다는 말을 들을까봐 미루고 또 미뤘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당장 1~2년 후면 학교를 가야하기 때문에 만약 필요하다면 면역치료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험도를 낮춰야 한다. "오잉? 치료방법이 있었어? 그런데 왜 안한거야?"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말이 면역치료지, 아이에게 위험하지 않을 만큼의 알러지 푸드를 매일 조금씩 먹여가며 서서히 양을 늘려가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혹은 정말 이유 없이 원래 괜찮던 양에도 갑작스럽게 두드러기나 기도가 붓는 아나필락시스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아이 컨디션 안 좋을땐 안먹이면 되잖아?"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아이 컨디션이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표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푹 자고 잘 놀고 멀쩡한 날에도 갑자기 기침을 하고 기도가 붓기도 한다. 예측할 수도 없고 종잡을 수가 없다.


몸에 좋은 음식도 아이가 먹기 싫어하면 먹이기가 힘들다. 하물며 아이에게 위험한 음식이고, 먹으면 혀가 따갑고 몸이 간지러워지는 독이나 다름없는 음식을 매일 먹이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자괴감이 엄청나게 든다. 아이가 더 커서 자아가 강해지면 더 심하게 거부한다고도 한다.


 


아무튼, 검사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혼자 결과를 들으러 병원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이 결과를 쓰는데 서론이 길어졌을까. 아직도 내 멘탈이 회복이 덜 되었나보다. 선생님은 "흠...난리가 났네..."라고 입을 떼셨다. 수치가 전보다 치솟았다. 우유가 더 심한줄 알았는데, 이번엔 계란 수치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알러지가 더 심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치가 오른다는 것은 오래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검사결과지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쳐주며 자세히 설명해주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떨어졌다. 의지와 상관 없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새어나오자 당황스러워 가방을 뒤졌다. 물티슈가 있다. 아...그냥 휴지로 챙길걸...축축한 물티슈로 눈물 콧물을 닦아가며 설명을 듣는다. 선생님은 이런 엄마들을 종종 보셔서인지 당황하지 않으시고 설명해주신다. "면역치료를 이젠 해야하는데, 우유부터 할까요 계란부터 할까요?" 아..우유...계란...고를 수가 없고 눈물만 줄줄 난다. 선생님은 생각해오라고 하시고는, 영 안되겠는지 이리 와보라며 나를 유발검사실로 데려가셨다.


"여기 50짜리 누구지?" 우리 아이처럼 우유, 계란 알러지가 있는데 심지어 수치가 훨씬 높은 아이가 지금 유발검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유발검사는 아이가 알러지가 있는 음식을 어느 정도 양까지 알러지 반응 없이 버틸 수 있는지 그 양을 측정하기 위한 검사다. 우유를 한 방울 먹이고 지켜보고, 또 한 방울 먹이고 지켜보고...두드러기나 부종 같은 반응이 나올 때까지 해본다. 이 검사 자체도 위험해서, 우리 아이는 전에 했다가 집에 가는 길에 얼굴이 토마토처럼 검붉어지고 난리가 났었다. 반응이 바로 오지 않고 수십 분, 수 시간 후에 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엄마가 감당해야 한다. 


검사실에 있던 아이는 9살 여자아이다. 지금 0.1cc 먹고 앉아서 동영상을 보며 반응을 지켜보는 중이다. 눈물 줄줄 흘리며 들어선 나를 보더니 그 아이 엄마가 "저요"하고 대답하고는 이내 같이 눈물을 떨군다. "아 정말... 참고 있었는데..."하면서...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 안 울려고 했는데...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전에 면역치료 했다가 너무 위험하고 무서워서 그만뒀었다, 근데 크니까 더 힘들더라...할거면 빨리 하는 게 낫다...많이 힘들죠? 아이는 2학년이라 급식도 우유 계란 들어간걸 스스로 받지 않고 가려서 먹는다고 한다. 그 누구도 아이가 배식 받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배식조차 도움을 청할 수 없는데, 아나필락시스가 학교에서 발생하면 어떻게 도움을 받으려나...나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겉으로 말을 꺼내면 서로 마음만 더 아프니까.


유발 검사실 다른 편에 앉아있던 엄마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천장을 보고 눈을 깜빡인다. 아이 앞에서 울면 안되는데...미안한 마음이다. 유발검사실 선생님은 나에게 "어머니 여기서 다 울고 가세요. 집에 가서 우시지 말고...아이가 6살이면 다 알아요."라고 하신다. 또 "저희 10년 이상 공부했고, 아이 안전하게 잘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도 이렇게 치료를 시도해 볼 수라도 있고, 소아용 젝스트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하며 위로해주신다. 언제 아나필락시스가 올 지 모르는 아이들을 여럿 관찰하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닐텐데도, 정말 따뜻하고 열정적이시다. 그래...이번 검사는 선생님을 믿고 맡겨봐야겠다...눈물을 닦고 나와 새로 처방받은 젝스트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한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무의식은 나름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집에 오는 길 지도 앱을 켜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자꾸만 길을 잃었다. 정신을 놓고 걷다가 이상해서 지도를 켜보면 우회전 할 곳을 지나쳐 있고, 다시 걷다가 이상해서 또 지도를 보면 길을 건너야 하는데 안 건넜고...10분 안에 걸어갈 거리를 20분 걸려 걸어간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또 정신을 놓고 가는데, 한참 가다 보니 뭔가 풍경이 이상하다.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탄 것이다. 다시 내려 또 길을 건너 버스를 타고...그렇게 1시간도 안 걸릴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려 집에 왔다.


다리가 무겁다. 걸음 빠르기로 유명한 나인데 느릿느릿 축 처져서 걷는다. 자주 통화하는 지인이 전화하더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가라앉았냐고 묻는다. 나는 무너졌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 한다. 


지인들이 위로한다. 검사결과를 알고는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좋은 마음으로 건네는 말조차 어쩐지 다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알러지 있다고 그 음식을 너무 안 먹여서 그런 것 아니냐, 혹은 반대로 과자 같은 시판 음식 말고 채소 과일 같은 것만 먹여보는 게 어떠냐...멘탈이 약해지니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말들도 다 내 탓하는 말로 들린다. 다 엄마가 애한테 아무거나 먹여서, 혹은 반대로 너무 까다롭게 굴고 유난 떨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이 사람들, 겉으론 나를 위로하지만 속으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도 누군가에겐 위로한답시고 이런 말들을 건넸을수도 있겠지? 사람들도, 나도 다 싫어진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아직 100%까지는 아니지만 꽤 많이 회복됐다. 2년 동안 거의 안울었는데 이번에 몰아서 다 울었다. 심리상담을 예약했다가 다시 취소했다.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또 오늘 아침 하늘이 맑아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했고...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옷 사입으며 기분전환 하련다. 여전히 다리가 무겁지만 다시 일어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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