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참는다
아이가 심리상담을 받은지 1년이 좀 넘게 지났다. 그 때 심리상담을 받기로 결심한 것은 아이가 평소보다 자주 울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며, 어린이집에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과 적극 소통하며 최대한 그 아이와 붙지 않게끔 하고, 최대한 많이 대화를 해 보았지만 한계가 느껴졌다. 아이를 이해할 수 없고, 아이와 나 사이에 벽이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옆 동네의 소아 심리상담 전문 센터를 예약하고 남편까지 셋이 향했다. 질문지에 답을 하는 동안 아이는 선생님과 놀이를 한다. 놀이를 하며 선생님은 여러 질문을 아이에게 던지고, 아이의 대답과 반응을 통해 심리를 분석한다. 약 30분~1시간 후 상담실에 들어가 앉았다. 아이는 다른 곳에서 놀고 있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 아이가 장난감으로 우유, 계란을 만들어 먹어보는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또 친구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우유, 계란은 절대 안된다고 못박아 두었는데, 오히려 아이 입장에서는 억눌린 호기심이 더 강렬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도시락을 싸가 친구들과 다른 반찬을 먹는 것도 아이에겐 크나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5살이라,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정 어린이집이 아닌 규모가 있는 민간 어린이집으로 옮기면서 단체급식을 하게 되었고, 모두가 같은 식판에 같은 음식을 먹는 환경 속에서 혼자만 다른 반찬을 먹는게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친구들이 건네는 말도 아이에겐 상처가 되고, 심리적 위축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나도 이거 먹기 싫은데, 넌 안 먹어서 좋겠다~", "승현이는 이거 먹으면 안돼~" 똘똘한 친구들의 배려가 담긴 말조차도 아이에겐 고맙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넌 우리랑 달라"라는 말처럼 받아들여졌나보다.
나와 남편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아이라서, 마음에 있는 말을 투명하게 다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5살 아이도 말을 돌릴 줄 알고, 정작 가장 깊은 진심은 내비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친구가 밉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 안에 그토록 무거운 진심이 담겨 있는줄 미처 몰랐....아니 알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날 이후로 급식에 우유, 계란 들어간 음식이 3가지 이상인 날이면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집밥을 먹이고, 함께 키즈카페에 가거나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울며 떼쓰던 행동도 줄어들어 거의 사라졌다. 6살이 된 지금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꽤 즐거워한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아이와 함께 심리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우리는 서로 각각의 사람이며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전문가가 개입함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배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아이는 그 때의 힘들었던 적응 과정을 한층 심화된 버전으로 또 다시 겪어야 할 것이다. 부디 아이가, 우리가 서로를 토닥이며 잘 넘어갈 수 있기를...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