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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Jan 21. 2023

우유 0.1cc가 한계라니

우유 경구유발검사의 기록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 때문에 고민을 토로하면 간혹 "집에서 조금씩 먹여보면 안돼?"하고 묻는 지인들이 있다. 물론 조금씩 먹여가며 내성을 키우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집에서' '조금씩'은 정말 위험한 말이다.


대학병원에 우유 경구유발 검사를 예약하고 검사실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예약이 많이 밀려 있었다는 의미다. 병원에서 하는 경구유발검사는 의사선생님이 아이의 상태와 그간 알레르기 관련 이벤트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어느 정도 양부터 시작해 어느 정도로 증량하며 먹여볼지 결정해 진행한다. 경구유발검사실이 따로 있고 의사가 상주해 아이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필요한 처치를 한다. 혈압체크, 두드러기가 나는지 아이에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또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할 경우의 처치까지 맡는다. 


경구유발검사를 하다가 아나필락시스가 오는 경우도 많고, 그 증상이 매우 심해 입원까지 하게 될 수도 있다. 우유 유발검사를 하다가 우유가 매우 소량 묻은 손으로 눈을 비벼 아나필락시스가 온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나는 검사 전날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잠깐 눈 붙였다가 악몽을 꾸고 깜짝 놀라 일어나고, 위장 기능이 아예 멈춘 듯 소화가 되지 않아 검사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이 곁을 지켰다. 당사자도 아닌 보호자인데도 이 정도로 긴장이 된다.



검사는 우유 한 방울을 입술에 묻혔다가 1~2초 만에 바로 닦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리 아들은 우유를 묻히고 바로 닦았음에도 가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미 닦아냈는데도 피부에 아주 미량 남아있는 단백질 때문인지...때문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왔음에도 두드러기가 입 주변에 약간 올라왔다. 피부에 묻기만 해도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부 반응과 먹였을 때의 반응은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약 20분을 기다려 피부 반응이 사라진 뒤 우유를 먹여보기로 했다.


약 20분 뒤, 우유 0.1cc부터 주사기로 먹였다. 아이는 우유를 처음 먹어본다며, 무슨 맛일지 너무너무 궁금했다며 설레어하더니 이내 몇 분 지나지 않아 "약 줘!"라고 외쳤다. 혀와 목구멍이 너무 따갑다는 것이다. 다행히 청진기를 대어봤을 때 숨소리는 괜찮다고 했다. 아나필락시스까지는 아닌 것이다. 조금만 견뎌보자, 조금만 참아보자...하며 아이를 달래고 물을 먹였다. 따가움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20분을 얼굴이 시뻘개져 힘들다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버티게 했다. 결국 의사선생님도 안되겠다며 약을 먹이라 하셨고, 준비해간 항히스타민제 5ml를 먹였다. 약을 먹이고 나자 몇 분 되지 않아 따가움이 없어졌다고 했고, 약 기운에 피곤해진 아이는 검사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검사가 끝나더라도 2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반응을 지켜봐야 한다. 반응이 몇 시간 후 뒤늦게 폭풍처럼 밀려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집에 가다가, 혹은 집에 가서 갑자기 아나필락시스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1시 30분에 검사를 시작했음에도 5시30분까지는 병원에 대기해야 했다. 물론 아나필락시스를 겪는 것보다는 대기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0.1cc에서 검사를 중단했기 때문에 집에서 우유를 조금씩 먹여보는 치료는 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우유를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게(이 말은 우유를 좋아서 마신다는 말이 아니라 우유를 실수로 조금이라도 먹더라도 아나필락시스는 오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해주고 싶었는데...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아나필락시스가 오기 전에 검사를 멈췄기 때문에 경구유발검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때문에 모닝빵으로 다시 경구유발 검사를 하기로 했다. 모닝빵을 8분의 1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씩 먹어보는 검사다. 물론 이것도 위험하겠지만...아이의 두려움이 조금 줄어든 상태이니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또 생각만으로도 배가 아프고 머리가 띵해진다.



옆에서 같이 검사를 받던 아이는 4살 여자아이였는데 30ml까지 우유를 마셨다. 검사실에서 만난 엄마들끼리는 "우유만 있어요? 알레르기 몇 개 있어요?"라고 묻는다. 보통 여러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그 아이는 우유, 계란뿐만 아니라 대두, 갑각, 견과 등 많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은 심지어 수치가 측정 불가로 나올 정도로 높다고 했다. 대두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은 두부도, 콩이 들어간 된장과 간장도 먹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히 콩 안 먹고, 우유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콩과 우유, 계란, 견과, 갑각류는 대부분의 식품에 성분으로 소량이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가 엄청나게 좁아지고, 실수로 섭취했다가 아나필락시스를 겪을 확률도 높아 식생활에 매우 많은 어려움과 제한을 겪는다.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 그럼 요거트나 치즈를 먹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다 안된다. 요구르트도, 버터도, 시중에 판매하는 대부분의 과자도, 심지어 귀여운 크니쁘니 주스에도 우유성분이 들어간다. 초콜릿은 비건초콜릿이라고 버젓이 인증 받은 제품인데도 먹였을 때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온다.


일반적으로 쉽게 공감 받을 수 없는 조마조마한 이 마음을 알기에 검사실에서 만난 엄마들은 그냥 얼굴만 보아도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심한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를 쉽게 마주칠 수 없는 나라에 살다 보니 이렇게 비슷한 고민 가진 사람 찾기도 쉽지가 않은데, 병원에 가면 모두가 알레르기 아이 엄마들이라 묘하게 편안한 마음도 든다.


긴장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유 유발검사를 끝내고 나니 한 단계는 나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있을 모닝빵 유발에는 조금 좋은 결과가 있기를, 아니 결과는 어찌됐든 아나필락시스만 안겪고 검사를 마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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