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없어도 나는 명절이 싫다.
너는 시부모님이 안계시니 명절 스트레스가 없지 않아?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하지만 나는 명절을 싫어한다. 지금도 설 연휴를 앞두고 두통에 시달린다. 과연 명절이 싫은 이유가 '시댁'에 가야 해서일까?
한밤중이나 다름 없는 새벽 3시, 4시면 부스럭거리며 일어나시던 할머니,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엄마와 큰엄마, 작은엄마의 모습...명절 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유아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명절은 용돈 받는 날, 맛있는 음식 많이 차려지던 날, 사촌들과 뛰어노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자, 딸만 셋 둔 엄마는 우리에게 명절 부엌일을 도우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촌 형제들, 사촌 언니에겐 그 누구도 일을 하라고 하지 않는데, 우리 엄마는 딸 셋을 일을 못 시켜 안달이었다. 고분고분 말 잘듣고 일손 돕는 참한 딸래미들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던건지, 아들이 없어 혼자 눈치가 보였던건지 모르겠다. 눈치껏 적당히 전 부치는 것을 돕고 상 치우는 일을 돕고 나면 모든 친척들이 떠나간 뒤에도 마지막까지 할머니 댁에 남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족 뿐이었다.
명절이면 으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명절이면 당연히 와서 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심지어 설 연휴 불과 일 주일 전에 동생 결혼식을 치러 모든 가족들과 친척들을 다 만났음에도, 명절이니 또 보러 가야한다고 생각하신다. 분명히 설 전날에 당일로 가겠다고 가족 카톡방에 말을 했음에도 못읽은 것인지 못 읽은 척인지 "그럼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 아침을 먹고 각자의 일을 보러가면 되겠다"고 대답하신다. 심지어 엄마는 이번 설에는 오지말라고 본인이 말해놓고는 "금요일에 올거니?"라고 언제 그랬냐는 듯 물어보신다. 가슴이 답답하다. 왜 다들 내 말은 안들리나요?
"명절이면 가해지는 압박감이 너무나 싫다."
아이 방학 때, 그리고 몇 달에 한 번은 친정에서 자고 온다. 평소에 얼굴을 못 보는 사이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 붐비고 차 막히는 명절에 꼭 집에 와서 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명절이면 길이 막혀 친정 집까지 가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내 집이 아니니 잠자리도 불편해 다녀오면 꼭 몸살이 나고, 캐리어 한가득 짐을 쌌다 풀었다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우유 계란 알러지 있는 아들이 계란 들어간 명절음식 먹고 싶어하는 것 말리는 것도 신경이 곤두선다. 게다가 우리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따로 치러야 하니 피곤함이 장난이 아니다.
명절이 아닌 때 부담 없이 언제든 찾아가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그 날이어야 하는것일까...그래 너희 마음대로 해~ 이번엔 오지마~ 해놓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토요일에 올거니? 자고 갈거니"하고 또 묻는 것도 너무 짜증이 난다. 다녀오고 나서도 마음이 늘 찜찜하다. 산뜻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다녀와야 또 가고 싶은데, 갈 때마다 왜 안 자고 가느냐며 늘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시는 부모님 때문에 가기 전에는 부담스럽고 갔다 오고 나면 찜찜하다. 아니 짜증이 난다.
그냥 이 날엔 부모님 댁에 가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운 것 같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보고 싶으면 찾아갈 수 있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데. 왜 부모님들은, 아니 우리 부모님은 가도 찜찜, 안가도 찜찜하게 만드는걸까? 그게 오히려 자식들 마음에 더 부담을 주고 가기 싫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본인은 젊은 시절 명절이면 아내와 아이들은 나몰라라 내버려두고 새벽까지 친구집에서 놀다 들어왔으면서, 왜 자식들이 명절에 자신들의 일정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까? 남들은 자식 고생 안 시키려고 애를 쓴다는데, 우리 엄마는 왜 일 못 시켜 안달, 남들 앞에서 본인이 자식들 부리는 모습을 못 보여줘 안달인걸까? 사실 명절이건 아니건 나는 친정을 편안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아무튼 나는 생각만으로도 몹시 피곤하고 지금 머리가 아프다. 명절이 진심으로 없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아이가 컸을 때 정말로 그러지 말아야지...올해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