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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Jan 16. 2023

새로운 삶과 죽음이 교차되던 날

동생의 결혼식날이 사촌동생의 발인일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모질도록 질긴 것이 목숨인데, 또 누군가에게는 종이 한 장 같은 찰나로 그 경계가 갈린다. 동생의 결혼식 하루 전날, 사촌 남동생의 부고가 날아왔다. 결혼하는 막내동생보다 한 살 많고, 나보다는 세 살 어린 두 아이의 아빠이자 30대 초반의 어린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 새벽녘 알람이 꺼지지 않아 들어가본 아내가 발견했을 땐 이미 엎드린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고 했다. 동생과 불과 몇 주 전에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통화도 했다는데,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평소 3교대로 근무하느라 피곤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0대 초반의 두 아이 아빠가 자다가 세상을 떠나버릴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할까. 발인일과 결혼식이 한 날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빠에겐 막내를 시집 보내는 날인데, 작은아빠에겐 소중한 큰아들을 영영 떠나보내는 날이 되어버렸다. 기막힌 운명에도 어른들은 침착하게 두 일을 모두 진행해냈다. 큰 어른들은 발인에 참석하시고, 어린 아기들을 키우는 자식 세대들은 결혼식에 보내셨다.  전날에는 장례식장, 다음 날에는 결혼식장으로 오신 친척분들도 있다. 결혼식장에 오신 분들은 깊은 배려로 그 누구도 장례식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얄궃다, 너무 잔인하고 짓궃다. 우리집 둘째와 그 집 둘째는 생일 날짜가 같다. 그런데 우리 집 막내와 그 집 첫째는 같은 날에 결혼식을, 그리고 발인을 했다. 이 무슨 잔인한 숫자놀음인지. 


사촌동생에게는 10살 딸과 6살 아들이 있다. 늘 어린아이 같던 동생이 나보다 먼저 아기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능숙하게 딸을 챙기던 모습이 참 신기했었는데. 그 아이의 둘째는 내 아들보다 한 살이 어리다. 사촌동생이 자기 아이들과 더 이상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하고, 놀이를 해줄 수도 없고, 커 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이 시리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작은아빠에게 도저히 연락을 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은 마음에는 누군가의 인삿말조차 잔인한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벼팔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이틀 내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저 못가봐서 너무 죄송하다는 말과, 제가 혹시라도 실수라도 할까봐 글로 보내드린다는 말로 메시지를 남겼다. 자식이 태어나면, 그 이전의 삶은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만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그런 자식이 떠난다면 인생 모두를 잃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잔인하다. 너무 못됐다. 정말 너무했다. 왜 이런 일이...춥고 시린 겨울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이 겨울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의미라도 만들고 부여해야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없고 가치 없는 불행은 출구 없는 암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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