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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Jan 26. 2023

엄마에게 죄책감 권하는 사회

약자에게 더 가혹해지는 말, 말, 말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약자를 도와야 한다",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지 말라"고 배우지만, 은연 중에 본능적으로 약자에게 더욱 가혹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의 박학다식함을, 의연함을, 건재함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는 의식적으로 억누르지 않으면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아이가 아프면 다 내 잘못인것 같아 미안해져요"라며 우는 엄마의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 보내는 미디어, 그리고 이에 세뇌되어 '내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건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엄마들. 그렇게 안 그래도 약자가 되어버린 엄마의 자존감은 더욱 쪼그라들고,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엄마인 것인가...스스로를 끊임 없이 자책한다.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꺼내자 주변에서는 마치 먹잇감 만난 하이에나처럼 "네가 너무 깔끔떨며 키워서 그렇다", "음식을 이것저것 먹여야지 가려 먹여서 그렇다"는 충고를 가장한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또 누군가는 "아이 먹는 음식을 가공식품 제외한 고구마, 사과 같은 천연식품만으로 관리하는 것은 어떠냐"는 정반대의 충고를 하기도 한다. 1년 내내 완모한 나에게 "혹시 모유를 안먹이셨냐"고 묻기도 한다. 내 아이의 알레르기 원인에 대해 다들 자기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혹시나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것 봐라, 그래서 아이가 그런거다!"라고 자신의 날카로운 지적이 맞았음을 인정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이가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이 이유식 시작하면서부터인데, 그 전까지는 조리원 나와서 한 달 가량 혼합 수유한 것을 제외하고는 100% 모유만 먹였다. 음식을 가려먹이고 막 먹이고의 기준조차 세워지기 전에 이미 알러지를 가지고 있었고, 아기치즈를 처음 입에 대는 순간부터 피부가 붉게 올라왔었다. 세상에 태어난지 반년 가량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집에서 남들과 똑같은 신생아 케어를 하며 키웠다. 


그럼 혹시 임신했을 때는 어땠냐고? 임신했을 때 우유랑 계란을 안 먹어서 아이가 알러지가 생긴 것은 아니냐고? 나는 정말 모범 임산부였다. 먹덧 때문에 음식도 오히려 더 열심히 잘 챙겨 먹었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막달 직전까지 일 주일에 2회 이상 운동도 다녔다. 조산기도 없었고, 예정일 1주일 전에 자연분만으로 정말 씩씩하게 낳았다. 의사선생님께서 임신했을 때 커피 마시는 것은 상관 없다고 해서 더운 날에는 매일 아이스라떼 1잔을 먹었고, 계란 반찬도 정말 자주 해먹었다. 회사에 다녔지만 임산부라 배려를 많이 해주시기도 했고, 일도 많지 않던 시기라 스트레스도 그다지 없었다.



아이 우유경구유발검사를 하러 갔을 때 다른 엄마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임신 때 정말 태교도 열심히 하고 일도 운동도 꾸준히 하고, 우유 계란도 잘 먹었는데 왜 아이가 우유 계란 알러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상대편 엄마는 자신이 조산기가 있어 거의 누워만 있다가 아이를 낳았다고, 그래서 아이가 알러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미안했다고 했다. 나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음에도 아이가 알러지가 있지 않느냐, 그게 원인이 아니니 절대 그런 생각 마시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 집은 첫째아이는 전혀 알러지가 없는데 둘째 아이만 우유, 계란, 견과, 대두, 갑각 등 여러 알러지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이며 키워도 누군가는 있고, 누군가는 없는 것이 알러지다. 그러니 주변에 혹시 아이 알러지로, 혹은 자신의 알러지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래서 그런것 아니야?"라고 자신 나름대로 추측하고 세운 가설을 내세우며 그 사람의 죄책감을 자극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때?"라는 제안도 금물이다. 그 말은 곧 "네가 이렇게 안해서 알러지가 있는 것 아니야?"라는 책망의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제안은 그 사람도 이미 시도해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무엇인들 안 해보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알레르기에 대해 10년이 넘게 연구하고 계신 대학병원 의사선생님들도 그런 말씀 하지 않으신다. 우리나라보다 알러지 환자 비율이 훨씬 높은 선진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원인이니 피하라"는 의학적인 지침이 없다는 것은 곧 엄청난 연구에도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만약 원인이 밝혀졌다면 그에 따른 확실한 예방법도 생겨났을 것이고 이렇게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고생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책망하고 싶다면, 죄책감을 굳이 얹어주고 싶다면 의학적 연구로 알러지가 생기는 원인이 밝혀지고, 그것이 확실히 그 사람이 제공한 것이 맞을 때 해도 늦지 않을것이다.



내가 내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한심해하고, 답답해하면 그것이 구부정해진 어깨에, 느려진 발걸음에, 생기 없어진 눈빛에, 나약해진 목소리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은 내가 먹잇감이다 싶어 달려들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약해져 울더라도 남들 앞에서는, 특히 내 아이 앞에서는 더 당당하고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나도 내가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혹시나 함부로 말하게 되지는 않을지, 꺾인 자존감을 약해진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방법으로 채우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해야 한다. 아마 나도 은연중에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살아왔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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