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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Sep 15. 2023

응시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점 하나를 계속 바라보다 보면 점점 점이 커져서 나를 삼킬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헤어날 수 없을 듯 압도되는 그 끔찍한 느낌... 나는 아이의 알레르기, 그리고 아나필락시스라는 점을 만났고 사정없이 그 안에 휩쓸려 허우적거렸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치즈를 먹이면 입가가 붉어지던 아이는 어린이집에 처음 방문한 날 생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는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검사를 받고 알게 된 우유, 계란 알레르기는 "커서 없어지겠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를 비웃듯 점점 몸집을 불려 기어이 아나필락시스라는 공포로 닥쳐오고 말았다.


아이와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공항리무진 안에서 전성분에 'solid milk'가 써있는 줄 미처 모르고 먹였던 두유 몇 모금이 발단이었다. 아이가 기침을 시작하더니 점점 그 빈도와 정도가 심해지고, 심하게 울면서 구토를 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 버스를 중간에 세우고 택시로 갈아타 응급실로 향했다. 예진하던 선생님은 차분히 손가락에 옥시미터를 끼우시더니 산소포화도 수치를 보시고는 놀라며 서둘러 자리를 잡아주셨다. 그렇게 그 날부터 아나필락시스 육아라는 살얼음판을 걷게 되었다.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물질에 대해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흔히 알고 있는 두드러기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침, 발진, 구토 같은 증상은 물론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기도가 붓고 호흡곤란, 저혈압, 의식소실, 심하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때문에 아나필락시스를 겪은 환자들은 에피네프린 자가주사를 처방 받아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아이가 죽을 뻔 했다", "또 그럴 수 있다"라는 사실은 내 머릿속에, 내 심장에 24시간 도사리며  나를 옥죄어왔다.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리고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그런 무서운 결과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주는 모든 음식의 전성분, 심지어 생수병 라벨까지 강박적으로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쳐서 미량이라도 우유, 계란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이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전성분에는 우유, 계란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올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퉁퉁 부은 입술과 전신의 두드러기,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며 119에 실려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이렇듯 나를 무섭게 압도하고, 장악한 아나필락시스는 지금도 늘 아이 곁에 도사리고 있다. "크면 나아질 것"이라는 내 희망을 비웃듯이 알레르기 수치는 검사할 때마다 더 오른다. 두돌 될 무렵 처음 아나필락시스를 겪었고 이제 7살 후반이니 대략 5년째지만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지난 번 진료에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알레르기와 함께 살아오면서, 아나필락시스를 수 차례 겪어오면서 나는 불행할까? 성장하지 못하고 퇴행했을까? 망가졌을까? 라고 묻는다면 정답은 '아니오'다. 물론 눈물 속에 잠긴 듯 숨쉬기조차 버거운 날들이 있었고, 마음에 비가 내리는 나날들이 끊임 없이 이어진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를 압도하던 공포감과 죄책감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된,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를 이제는 조금 차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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