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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집

by 글임

향은 기억을 남긴다. 짭조름한 조기냄새는 어린 시절 세 남매에게 살을 발라주시던 어머니의 젓가락, 나무 냄새는 그늘진 바위 위에 누워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던 어린 날의 여름, 고소한 커피 향은 처음 닮고 싶다 생각했던 선배와 함께한 카페, 때론 스쳐간 사람의 샴푸향이 가까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찰나의 냄새가, 순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모양이다.


“어떻게 니 건 줄 알았냐고? 너 냄새나던데” 어릴 때는 친구네 집에 가면 나는 냄새가 있었다. 이 냄새는 이 친구네, 저 냄새는 저 친구네, 그러니 체육시간, 같은 체육복이 여러 개 섞여있어도 저마다의 향이 있어서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각 가족마다 고유한 향이 있는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향은 뇌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이 다른 감각과 다르다. 후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은 간뇌를 거쳐서 대뇌로 전달되는 반면, 후각은 곧바로 대뇌의 '안와전두피질'에 전달되는데, 이곳은 기억과 감정에 관련 있는 해마·편도체와 연결되어 있다. 찰나의 과정을 통해 냄새를 맡는 그 순간의 감정과 기억이 함께 우리의 머리에 저장된다. 덕분에 향은 어떤 이미지 보다도 강하게 기억을 남긴다. 코를 지나 대뇌를 거쳐 크기를 알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 그 어딘가에,


말의 품격, 언어의 온도 등 여럿에게 사랑받는 글을 쓴 이기주 작가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인향이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남긴 삶의 향기, 자취, 흔적등이겠다. 불현듯, 내 잔향은 어떻게 남겨졌을까 생각해 본다. 기억할만한 장면일까, 더러 맡음직한 향이었을까


찻잎에 따뜻한 물을 붓고 자리에 앉았다. 마침 향수가 다 떨어졌으니, 내일은 좋아하는 향수가게에 들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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