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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집

달리기

by 글임

서른에 알게 된 것이 있다. 내 몸은 가만둘수록 움직이는 법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한다. 팔꿈치를 뒤흔들고 발을 구르며 온 세상에 내가 살아 있다고 티를 팍팍 내야, 비로소 내 몸도 내가 살아 있는 줄 안다.


몸이 영 찌뿌등하고 영 기운이 없을 때면, 옷을 갈아입는다. 일상복을 벗고 운동복을 입는건 일종의 의례같기도 하다. 러닝양말을 신을 때면 무겁기만 하던 다리도 호들갑을 떠는지 금세 뛰고 싶어진다. 누워 있기에 여념이 없던 마음은 러닝화에 도둑을 맞는다. 이 마음은 기어코 달리고 나서야 돌려받을 수 있다.


차를 타고 십여 분을 가면 나오는 실내체육관, 타원형의 레일을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만큼 달릴 수 있을까, 그야말로 ‘고인물 러너’들이 보일 때면, 괜스레 머뭇해지는 마음을 외면하고 팔과 다리를 쭉쭉 늘려본다. 몸 구석구석에 ‘이제 곧 뛸 거야.’, ‘놀라서 내일 날 힘들게 하지 마.’ 등등, 신호를 준다. 이내 나는 레일에 선다. 걷는다. 달린다.


귀를 스치는 바람결에 규칙적인 소리가 흔적을 남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 오른발과 왼발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 몸을 훑고 가는 바람소리. 나는 그 소리가 좋아서 배실배실 웃음을 짓는다. 누가 나보다 빠르든, 어떤 얘기를 하고 있든,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어느새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러닝화를 벗는다. 그리고, 수없이 반복한 다짐을 되뇌인다. 오늘에 충실했음 되었다고, 잘 쉬고 또 잘 달리고 있다면 되었다고, 그러면 마침내 잘 도착할 거라고 말이다.


샤워하고 나와서 운동 기록을 봤더니, 원래 뛰려던 것보다 더 뛰고 왔다. 그래. 달리다 보면 마침내 잘 도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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