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
집에 오래 붙어있는 날이 흔치 않은 터라 오늘 같은 날이면 어김없이 늦잠을 잔다. 아직 커튼을 달지 않아 ‘느지막이’라고 해 봤자 강렬한 햇살이 창가를 넘어 침대까지 자리를 잡는 바람에 9시면 눈을 뜨곤 한다.
찌뿌드드한 몸을 개키고 차가운 물 한 잔을 떠 마시면서 집안을 둘러본다. 밖을 둘러보다 보니 미처 돌보지 못한 집안이 눈에 들어온다.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벽지에서 떨어진 포스터, 전등 위에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 미루고 미루고 미뤄왔던 일에 하나씩 천천히 손을 대본다.
베란다에는 어머니가 주신 식물이 있다.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새 허리춤까지 키가 큰 나무가 있는가 하면, 뿌리를 잃고 메말라 버린 갈색의 식물도 있다. ‘죽은 식물은 정리하고, 다른 식물들 집을 좀 마련해 줘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에 쓰레기통과 모종삽, 분갈이 흙과 화분을 챙겨서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애초에 식물을 키우지 않았으면 화분을 살 일도 없었을 테고, 말라죽은 모습을 보며 속상해할 일도 없었다. ’ 내가 관심을 못줘서 죽었나?‘ 고민하고, 미안해할 일도 없었겠다.
분갈이를 마치고, 쓰레기통에 모아 버리고선 집에 다시 들어온다. 겸사겸사, 물을 한번 줘야겠다 싶어 물통에 가득 물을 담고 하나씩 하나씩, 필요한 만큼의 물을 먹인다. 허브류의 식물들은 물을 주면 제 향기를 내게 돌려주는데,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말을 건넬 줄 모르니, 제가 할 수 있는 모양으로 “고마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태여 애쓴다. 제 멋대로인 식물들을 애써 돌보고, 사랑하고, 아낀다. 내 원대로 잘 자라주지 않아 속이 상하고, 때마다 분도 갈아주고, 흙도 골라주고, 잎도 정리해 줘야 한다.
그럼에도 애쓰는 것은 잎을 한번 쓰다듬어 주면 뿜어 나오는 향을 맡고 한번 미소 짓는 일, 빨래를 마치고 뒤돌아섰을 때 언제 자랐는지 큰 키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일, 가끔은 열매를 맺어서 내게 ”이것 좀 봐.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일이 좋아서이다.
식집사의 일을 마치고 거실에 앉아 글을 쓰려고 봤더니 어느새 손톱이 꽤 자라 있다. 주섬주섬, 손톱깎이와 휴지를 챙겨 들고 ’ 이참에 나를 좀 돌봐야겠네.‘생각한다.
오늘은 종일 집에 있어 보려 한다. 나는 집을 돌보고, 집은 나를 돌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