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
차경’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풍경을 빌려온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인데, 경치가 좋은 카페,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좋은 곳을 ‘차경을 잘 활용했다,’라고, 평가한다.
특별히 차경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자주 쓰인 단어이다. 지혜로운 조상님들은 저마다 창문을 액자 삼아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한옥은 문과 창문이 많은 구조로 되어 있다. 덕분에 계절을 지날 때마다 초록색으로, 노란색으로, 빨간색으로, 또 하얀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자연을 볼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 ’차경‘이라는 개념이 자연에서 좋은 경치로 확대되는 듯하다. 후암동 해방촌에는 컴포터블이라는 카페가 있다. 아끼는 향수 집에서 남산 앞에 차려둔 카페인데, 매일 저녁 8시 30분 경이되면 블라인드로 창을 가리고선 실내조도를 낮춘다. 곧이어 블라인드가 올라가면서 음악과 함께 서울의 야경을 보여준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에서 가장 로맨틱한 공간임이 틀림없다. 카페 창밖으로 그 모든 것들을 직접 연출해야 했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 때마다 움직이는 차의 하얀색 헤드라이트, 형광등 불빛이 켜진 건물 사이사이를 지키고 선 빨간색 십자가가 조화로운 풍경을 만든다. 손 하나 대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빌려왔으니, 근사한 차경이다.
’ 가지려 하지 않고 빌려온다. ‘차경의 태도이다. 꽃을 꺾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나무를 뽑지 않고 그 자리에 두는 것, 소유욕이 넘쳐나는 세상에 ’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러하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둔다. 노년의 배우가 한 프로그램에서 “내 나이쯤 되면 꽃을 꺾어서 가져오기보다 두고 다시 보러 온다.” 라던데, 어쩌면 차경의 태도는 ’ 그대로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할까 싶다.
그대로 둔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모두가 ‘나‘ 일 수 있는 그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