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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집

문래동

by 글임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베어링, 철골, 닥트라는 투박한 디자인의 글자 사이사이로 그 형태가 닮은 듯 다르게 생긴 가게들이 숨어있다. 처음 온 사람들과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양 골목마다 음식점이며, 카페며, 비슷한 옷을 입고 숨어있으니 찾아가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문래동에서 만나자고 한지 3년째, 세 번의 해를 넘기는 동안 이곳에서 내리 약속을 잡았으니, 이제 어지간한 곳은 지도를 켜지 않아도 내 집 앞마당 돌아다니듯 찾아간다.


가끔은 문래동 구석구석을 가이드해주기도 한다. 무슨 가이드까지 필요하겠냐만, 가게마다 나름대로 묻어있는 스토리가 있어 말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20분이 훌쩍 지나간다. 이런 일에 퍽 재미를 느끼는 걸 보니, 여행 가이드를 업으로 했어야 했나 싶다.


왜 하필 여기냐고 묻는다면,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던 터라 오고 가기 편하고, 가깝고, 좋은 공간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뭘 좋아하는 데에 꼭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했으나 구태여 고민해 보니 더 가까운 곳에 좋은 공간이 있더라도 거진 모든 약속을 이곳으로 잡는 데에는 필히 이유가 있겠다.

약 2년간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나는 여섯 달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리웠던 사람들도 더러 만나고, 책도 조금 읽고, 감사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주말에는 교회에서 역할을 다했다. 남는 시간이 있어 세상 돌아가는 구경을 하고 있자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치열한 삶 속에 나 홀로 강태공이라도 된 모양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눈이 떠져 창문을 열었다. 그 이른 새벽차를 끌고 출근하는 옆집 아저씨가 보였다. 지극히 평범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이내 여유를 부리는 나와는 극명히 대비되어 보였다. 평범하기 위해 치열해야 한다니, 그 삶이 그저 ‘평범함’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나는 다짜고짜 핸드폰을 들고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두 편의 단편집으로 끝나버린 영상이었으나, 그 시간은 내게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남겼다.


문래동이라는 동네는 그 태도와 닮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동네, 바삐 돌아가는 공장을 배경 삼아 음식점이 자리를 차지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산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이 좋은 경치를 자랑하겠지만, 그와는 다른 결의 풍경이 있다. 붉은 고철로 둘러진 빵집의 간판,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카페의 나무바닥, 빨간 벽돌이 매력적인 세모난 집, 꼭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어쩌면 나도 이곳을 닮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고철과 벽돌이 나무와 어우러져 ‘럭셔리’ 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래되어도 그 모양새가 나름의 태를 내는 사람, 만남의 여운 중에 맡음직한 잔향이 남는 사람, 그런 문래동과 닮은 사람.


찻집이 생겼다던데, 다음에는 차를 마시러 가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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