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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의 Expat Nov 29. 2021

홍차! 너무도 영국적인...

1948 독립, 1967 실론티 백주년

대부분의 차 생산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지만 식민지 시절 차 소비 국가의 대명사는 영국이었다. 식민지 스리랑카 홍차 산업 역시 영국 귀족들의 기호품인 차를 값싸게 생산하기 위한 생산 기지 역할이었다. 이렇게 선택된 차 산업은 실론의 경제, 정치, 사회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1840년대 이후 식민지 정부는 경제적으로 농장에서 징수되는 세금과 관세에 대부분 의존한다. 지역 경제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었다. 차 수출 대금으로 쌀 등 생필품을 수입했고 차 산업과 함께 은행가금융업자들이 성장한다. 별 열의 없는 경제 다양화 시도는 실패하고 사실상 식민지 실론은 차 이외 거의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다. 차 산업에 대한 의존은 차 산업에 상당한 정치적 권력과 영향도 부여하여 총독 입법 위원회 위원으로 농장주 협회 멤버 한 명이 임명된다. 사회적으로중요한 영향이 있었다. 실론의 다양한 민족에 또 하나의 요소가 추가된 것이다. 노동집약적 차 산업 노동력은 대부분 남인도에서 커피 노동자로 실론에 온 선조들의 자손이다. 커피 노동자는 시즌이 끝나면 페리 열차를 타고 남인도로 돌아갔지만, 차 산업은 년 중 내내 노동자가 필요고 이들은 정착 거주민이 다.


1890년대 후반, 실론티 무역 구조는 대농장 중심으로 대부분 형성된다. 지금도 스리랑카에 차 여행을 떠나면 주로 방문하게 되는 곳이 이렇게 형성된 대농장인 차 플랜테이션이다. 스리랑카의 차 대농장을 방문하면 차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농장도 있고, 공장도 있고, 농부들의 삶도 있다. 테스팅도 고 차를 만드는 과정도 자세히 견학할 수 있다. 오늘날 어떤 차공장은 고급 호텔로 변신하였고, 어떤 농장주의 방갈로는 하루 1000불을 호가하는 호화 여행지가 되기도 하였다.


대농장에이전시 하우스들은 경매시장에 보낼 각 농장 차 샘플 보고를 위해, 중개인과 바이어들은 차 구입을 위해 티 테스터 전문가를 고용했다. 대다수가 영국인인 이들은 식민지 시절 주요 관리자와 임원으로 경매에 참가하고 회사 관리도 담당했다. 물론 1915년 차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토마스 아마라수리야(Thomas Amarasuriya)처럼 몇몇 실론인이 차 산업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차 산업은 영국인 중심의 배타적인 산업이었다. ‘티 무역’ 구조 역시 한번 만들어진 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실론 상업회의소(Ceylon Chamber of Commerce, 1839)와 콜롬보 차무역협회(The Colombo Tea Traders’ Association, 1894)는 세계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전쟁을 겪으면서도 식민지 시기의 관리방법오너쉽 구조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1930년대 말 짧은 기간 찻잎 해충(Tortrix Caterpillar)이 찾아왔다. 농장주와 수출업자들은 커피 병충해의 망령을 걱정했지만 차연구소(1925년 설립)가 찻잎 해충 확산 방지법을 찾았다. 1932년 사기업 투자 협의체로 스리랑카 차 위원회(Sri Lanka Tea Board)의 모체인 차 판촉 위원회(Tea Propaganda Board)가 설립된다. 2년 후 실론티 명성 유지를 위해 하위 등급 차 수출 금지 제도가 시작된다. 1946년 마케팅 분야의 주목할 만한 사건, 런던에 첫 번째 실론티 센터도 오픈한다.




1948년 독립의 여명


1948년 2월 4일, 실론은 드디어 식민지 역사를 끝내고 독립을 맞는다. 독립 초기 차 산업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았다. 농장 인도 노동자의 시민권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생산량 자체에 영향은 적다. 실론티 무역의 역사는 점점 축적되었고, 외국 수도에 티센터가 설립되며 판촉이 이루어진다. 물론 가장 주목받았던 곳은 1946년 설립되어 전성기에 매년 50만 컵 이상을 판매한 런던의 티센터였다. 1962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티센터를 방문하자 더욱 적극적인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고 같은 해 실론은 세계 최고 차 수출국이 된다. 1965년 2억 2천 8백만 킬로그램의 수출을 기록하고 세계 수출업자 간 프리미엄 차의 위치를 확보한다. 1967년, 숨 가쁘게 한 세기를 달려온 실론티는 백주년을 맞이한다.


한편 차농장 바깥의 세계에는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가 점점 더 거세진다. 독립 후 20여 년 소란스러운 기간을 보낸 섬나라는 이전과 매우 다른 곳이 되었고 이후 급속한 변화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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