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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작가의 글쓰기 조언

글쓰기는 피아노 연습과 같다

by 림태주


1.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막연합니다. 그래서 답도 애매하게 할 수밖에 없어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이 질문을 제대로 정의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은 누구나 씁니다. 유치원 때부터 배웠으니까요. 즉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말은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나를 타인들 앞에 내보이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그래서 ‘잘’이 붙는 겁니다. 좋게, 잘 내보여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니까요. 나를 표현하려면 내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들어있는 것, 그것이 나입니다. 나에 대한 관심, 나에 대한 탐구가 곧 생활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2. ‘잘’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글쓰기 실력이 학생 시절의 수준에서 멈췄기 때문입니다. 이후 글쓰기 훈련을 해 본 적이 없을 겁니다. 배운다는 것은 연습하고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연습과 훈련은 체계적이고 집중적이어야 실력이 향상됩니다. 향상의 과정에 필요한 것은 목적의식입니다. 우리가 10년, 20년 동안 운전을 해왔지만 카레이서처럼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은 운전을 못해서가 아니라 탁월한 수준까지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오랫동안 많은 글을 써도 의식 없이 글을 쓰면 전혀 늘지 않습니다. 빨간펜을 들이대면서 의식적으로 써야 글쓰기 실력이 향상됩니다. 피아노는 그냥 쳐지지 않습니다.


3. 의식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내 글을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좋은 글과 나쁜 글을 선별하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나쁜 글쓰기 습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쁜’이란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즐겁기는커녕 짜증이 나게 만드는 것, 내 글을 해독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쁜 글들은 문장이 이중 삼중의 복문으로 구성돼 있고,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배배 꼬여 있고, 문장과 문장의 맥락이 논리 정연하게 연결돼 있지 않고, 어려운 개념어나 추상어가 남발돼 있어 현학적일 뿐 감동이 없는 글들입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단문으로 짧게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4. 단문으로 짧게 쓰려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어보길 권합니다. 단문의 모범입니다. 그는 무인이라서 듣고 보고 알게 된 사실만을 기록하려고 애쓴 사람입니다. 글에 군더더기가 없고, 간명해서 힘찹니다. 형용사나 부사는 삿된 말들입니다. 내가 ‘파란 바다’라고 써버리면, 그 바다가 다른 색을 품고 있고, 보는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파랗다’에 묶여서 꼼짝을 못하게 됩니다. 바다가 정말 파란가요? 정말 늘 파란가요? 이때 ‘파란’이라는 형용사는 바다의 의지와 뜻과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바다를 파랗다고 규정해버렸으니 삿되다고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파도는 거칠었고, 바람은 거셌다.” 동사만으로도 바다는 충분히 역동적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바다는 단문으로 표현된 사실 그대로의 바다였습니다. 글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5. 글을 못 쓰는 사람은 표현력이 부족해서라고

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글감이 부족해서입니다. 글감이 넘쳐나는 사람은 참지 못하고 토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표현력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안에 글감의 우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우물의 뚜껑을 열어 퍼내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캄캄하게 뚜껑을 닫아놓고 퍼낼 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살아온 생의 이력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쌓여있는 곳이 삶의 우물입니다. 우물물을 퍼내서 쓰다보면 곧 마르게 됩니다. 우물물을 계속 보충해 줘야 합니다. 보충하는 방법이 책을 읽는 일입니다. 여행을 하는 일입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를 배우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몸 쓰기입니다. 몸을 놀리지 않는 사람이 정신의 허기를 채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6. 여행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체험들은

다 몸 쓰기에 속합니다. 목공일을 배우는 것, 기타나 피아노를 치는 것, 호미질을 하고 삽질을 하는 것,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것 같은 체험의 일들은 몸 안에 기술과 숙련을 쌓습니다. 이런 몸 쓰기는 몸의 빈 곳을 채우고 싶어서 책 읽기도 시도하게 됩니다. 책 읽기 또한 몸 쓰기입니다. 몸을 쓰면서 읽으면 훨씬 효과가 커집니다. 체험과 관련된 책, 욕망의 온도가 가장 뜨거운 지점에 맞닿아 있는 목록의 책들을 읽어야 쏙쏙 몸 안에 저장됩니다. 책은 더럽게 읽을수록 좋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곳에 연필로 밑줄을 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좋은 문장은 손으로 베껴 써야 합니다. 몸을 써서 책을 읽어야 내 정신의 우물로 흡수됩니다.


7. 말과 글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말은 상대방이 있으니 표정이나 몸짓으로 말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습니다. 글은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글로만 보여줘야 합니다. 불리합니다. 말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면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구에게 말할 것인지 대상을 정해서 써야 명료해 집니다. 영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글로 그림을 그리듯이 쓰면 좋습니다. 말은 사람들이 있을 때 하지만, 글은 나 혼자 있을 때 쓰는 것입니다. 글을 쓰려면 결국 나 혼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독을 피하지 말고 자주 벗해야 좋은 글을 퍼 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말을 걸고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말을 문자로 옮기는 작업이 글쓰기입니다. 나의 소리를 들으려면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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