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주의자의 사생활
그곳에 초승달 같은 절이 있었다. 석양이 오래 머문다는 와온 해변 어디쯤이었다. 스님은 차를 권하고 다실을 나갔다. 사람에 치였으니 혼자 호젓함을 즐겨보라는 것인가. 창문에 섬 한 점과 바다 한 폭이 걸려있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햇볕이 깊어서 나는 반쯤 젖었다.
차를 우리는데 누군가 자꾸 노크를 했다. 풍경소리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왜 그리 소란스러우냐고 나무랐다. 그러자 풍경은 바람을 나무랐다. 그러자 바람은 나를 나무랐다. 본래 흔드는 게 바람의 일인 것을, 본래 소리를 내는 게 풍경의 일인 것을. 나의 본래의 일은 무엇이었나.
바다가 한없이 고요해서 소리 없이 차를 마셨다. 저물도록 일어서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