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게 빵을 내주는 사람

바다가 보이는 우체국에서 쓴다

by 림태주

날이 저물고,

낯설고 외딴곳에서 잠자리와 음식이 필요한

여행자가 있다.

그리고 낯선 여행자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기꺼이 내주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렇게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단지 날이 저물었고 여행자가 허기졌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그가 내준 잠자리의 허름함과

음식의 남루를 탓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지극한 선의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대체 그의 선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는 무엇을 바라 베푸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그것을 되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일까.

여행자와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 때문일까.

그 여행자는 다시 이곳에 찾아올 수 있을까.

그 여행자는 이 선의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 것인가.


가령, 지상의 모든 것이 죽으면

신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하루를 살다 온 나방이 있고,

천일을 헤엄치다 온 물고기가 있고,

백 년을 살다 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신에게는 먼저 온 나방이나 물고기나

늦게 온 사람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살아서 누린 시간의 길이로 귀천을 따진다면

신은 신의 나라에 만물을 들일 필요가 없고

만물 마다에 신성을 깃들게 할 이유도

그 자신이 존재할 근거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단 한 번 잠시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나

천일을 같이 지내다 헤어진 사람이나

똑같이 여기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있거나 없거나

낯선 여행자에게

잠자리와 빵을 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어떻게 친구가 생겨날 수 있는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지상의 여행자는

밥 짓는 연기가 나는 집으로 가 하룻밤을 청한다.

그곳에는 신이 살고 있고

그 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하룻밤의 시간이 여행자의 일생일 수도 있고

한 조각의 빵이 지상에 와서 그가 맛보고 가는

음식의 전부일지도 몰라,

먼저 와서 머물고 있는 사람은

그가 먹는 빵과 그가 눕는 자리를

기꺼이 내주는 것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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