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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태주 Feb 19. 2017

꽃이 그리 쉬운가

조선의 매화를 만나러 가다

     




사람마다 못 견디는 게 있다. 낯선 자리를 못 견딘다거나 불편한 관계를 못 견딘다거나 뒤에서 들려오는 험담을 못 견딘다거나 혼자 있는 걸 못 견딘다거나. 나는 견딘다. 다만, 봄을 못 견딘다. 봄을 감지하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나는 폐로 봄과 접선한다. 봄은 은밀하게 상승한다. 햇볕에 데워지는 흙과 공기와 바람과 물과 나무는 시시각각 고유의 냄새를 발산한다. 폐가 봄을 흡입할 때는 냄새 분자의 개별적 고유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냄새들은 서로를 빨아들이고 열렬하게 몸을 섞는다. 혼융된 향기는 폐부의 회로를 따라 뇌로, 내장으로 거침없이 침투한다. 심장의 실린더에 분사된 봄의 입자들은 혈액을 뜨겁게 펌프질한다. 참아내기 힘들다. 절제는 흐트러지고 육체는 흐느적거린다. 3월의 공기는 겨우내 벼린 정신의 검을 일시에 무장해제해버린다.     


  

나는 고요를 흠모하는 사람이다. 그해 3월의 유혹이 아니었다면 고요와 살림을 차렸을 것이다. 매화나무는 매화를 피운다. 봄날이 시키면 어디에서건 매화나무는 꽃망울을 맺고 여차하면 터트린다. 흔한 일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 매화에 대한 모욕이다, 그가 반박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그를 바라봤다. 한 자리에서 목숨을 다해 몇 백 년을 살아내는 일이 흔한가, 그가 내게 물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그리 쉬운가, 그가 내게 물었다. 가보지도 않고 만난 적도 없으면서 다를 바 없으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이 밟고 서 있는 자리만큼이라도 온전히 당신 자신으로 채워본 적이 있는가, 그가 내게 물었다. 어느새 나는 등뼈를 곧추세우고 앉아있었다.      



그가 밤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밤에 따라나섰다. 꽃을 보러 가는데 왜 낮이 아니고 밤이어야 하는가, 나는 물었다. 가보면 안다, 그가 수묵화처럼 여백을 남기고 말했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 밤새 달린 버스가 멈춘 곳은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사 절터였다. 바람은 숨죽였으나 공기는 차고 달빛은 괴괴했다. 불 꺼진 몇 채의 지붕 낮은 집들이 절터를 마당삼아 가람처럼 옹기종기 배치돼 있었다. 매화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높은 공중에 매달린 희고 고운 매화 천지를 상상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겨우 있었다. 지붕 낮은 집들과 키를 맞추어 단아하게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눈치를 챘는지 고려 말 정당문학을 지낸 강회백이 심은 나무라고 그가 말했다. 벼슬을 따라 정당매라 부른다고 했다. 600년을 산 고매라고 했다. 기력이 쇠잔해 언제까지 꽃을 피울지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나무에 검버섯 같은 이끼가 닥지닥지 달라붙어 오래된 유물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꽃은 화려하지 않았고 창백한 병자의 얼굴 같았다. 애잔했다. 봄은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한 해를 살아냈음을 확인하는 생존증명서인 것인가.     


 

그를 따라 농로를 한참 더 걸어 내려갔다. 들판 언덕빼기에 거칠게 가지가 휘늘어진 우람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들판에서 바람을 이겨낸 이름 없는 나무여서 ‘야매’라고 부른다고 했다. 기품 있고 정숙했다. 꽃나무 아래 들어서자 폐부가 절로 열렸다. 나무 아래에 매화 향기가 고여 있었다. 향기는 달빛에 눌려 발효되고 있었다. 달빛과 몸을 섞은 농축된 향기가 폐 속으로 유입됐다. 아찔하고 아득해서 허공이라도 붙잡고 서있어야 했다. 왜 밤이어야 하는지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밤 나는 잠을 설쳤다. 여자의 살 냄새 같은 것이 숨을 쉴 때마다 내 안에서 풀풀 새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는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로 갔다. 450년 전 남명 조식 선생이 손수 심어 향기를 즐겼다는 남명매를 만났다. 고결했다. 가파르고 정결한 조선 선비의 성품이었다. 뼈에서 꽃을 피운 듯 고고했다. 눈에 담는 꽃이 있고 마음에 담는 꽃이 있다고 했다. 매화는 술과 같아서 취할 뿐 어디에도 담아 둘 수 없다는 것을 그 봄에 알았다.    


  

사람은 왜 걷는가. 폐 때문이다. 봄에 왜 떠나는가. 폐 때문이다. 꽃이 그리 쉬운가. 아니다. 마지막일지도 몰라 안간힘을 다해 피우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자리를 자신의 향기로 채워봤는가. 물들일 염료도 향유도 마련하지 못했다. 누추하다. 봄을 견디는 게 자랑인가. 서럽고 쓸쓸한 일이다. 가보지도 않고 매화를 봤다고 말할 수 있는가. 거지같은 일이다. 당신은 왜 새봄에 다시 살아있는가. 폐가 다리에게 명령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다.

 “걸어라, 나의 다리여! 뼈가 삭아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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