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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태주 Feb 25. 2017

지구인에게 투하된 지적 비상식량

배명훈 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



     

달에 사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무용수다. 상상 만해도 로맨틱하다. 그녀는 천정 높이까지 스프링처럼 도약할 수 있을 테니까. 느리게 펼쳤다 느리게 오므리는 꽃송이처럼 황홀하고 우아한 춤사위를 선보일 테니까. 여기는 지구다. 달에서 지구로 이주해 온 그녀는 좌절한다.


발끝에 온 힘을 모아 도약해도 달의 1/6 만큼밖에 상승하지 못한다. 달에서 가능했던 현란한 동작들을 지구에서는 구현할 수가 없다. 지구의 중력은 현대무용을 하는 그녀에게 힘겨운 짐이다. 지구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조건이 다른 별에서 온 누군가에게는 형벌이 된다. 우리가 우주 어떤 곳에서 지구로 이주해 온 첫 사건을 ‘탄생’이라고 한다면, 지금 여기의 삶이 곧 고통이고 짐이라는 철학적 명제도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우리가 달나라 무용수가 아닐지라도.   

    


달에서 이민 온 은경 씨는 지구에서 만난 자신의 남자에게 공연 초대장을 내민다. '무중력의 경이!' 라는 타이틀이 박힌 초대장에는 외계예술가협회 창립 기념 공연이라고 적혀 있다. 화성신체예술가동맹과 지구궤도예술가조합과 은경 씨가 소속돼 있는 달예술가협회가 합작해서 선보이는 전무후무한 공연. 달과 화성과 지구궤도의 환경을 완벽하게 재연한 특별한 무대에 남자는 초대받는다.


날개를 활짝 펴지 못하는 그녀의 안타까운 공연을 매번 지켜봐 왔던 남자는 미항공우주국 우주센터에 설치된 무대에서 비로소 예술하는 은경 씨, 환희에 찬 은경 씨를 보게 된다. 끝없이 구토하고 멀미하면서 자기 여자의 예술혼을 경이로운 눈으로 목도한다. 그리고 남자는 달에서 온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지구의 묵직하고 음울한 중력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서른넷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저버릴 때까지.     



소설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많은 것들 중에서 작가는 자신이 상상하고 해석한 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가 만든 세계에 갇히는 것, 그가 만든 농담이나 허무나 거짓의 세계를 수용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설가 배명훈의 발명과 세계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가 발명한 세계는 때로 허황되고 낯설지만, 마치 내가 숨 쉬는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마법을 지녔다. 그는 자신이 설계하고 구축한 세계의 구조며 무대장치들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 세계는 그냥 거기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 세계 안에는 달에서 온 무용수가 있고,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궁구하느라 전투를 멈춘 인공지능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배명훈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질적인 미지의 일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에서 가져온 추억의 사진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유년시절에 높이뛰기와 멀리뛰기 선수였다. 점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프링보드를 밟고 도약하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장난감 자동차를 가진 아이들이 한번쯤 트랜스포머를 상상하듯이 나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공중에 체공하는 것을 꿈꿨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고 싶었다. 천상의 경계 밖으로 튀어나가 다시는 지표면을 밟고 싶지 않았다.


이런 불온한 상상에 감염되면 지구에서의 삶은 그때부터 몹시 고달프고 서글퍼진다. 어떤 소년들은 저항할 수 없는 중력 때문에 음울하고 내성적인 남자가 되고, 어떤 소년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재빨리 순응해 장딴지에 근육을 채우며 쾌활한 어른으로 변한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높이 뛰려고 발버둥치는 외로운 스포츠를 그만 뒀다. 대신에 수학과 영어와 기술 공부가 내 인생을 지배하도록 허락했다. 그 굴종의 대가로 나는 상상력을 잃었고, 지구적 삶에 적응했고, 지금껏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배명훈의 소설은 내게 실락원이다. 환희이면서 상처다. 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에는 배명훈이 SF소설에 천착해온 10년의 성과가 농축돼 있다. <홈스테이>에는 디지털 기계에 아날로그 소음을 장착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예비군 로봇>에는 나라는 자의식에 빠진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온다. 또 <스마트 D>에는 ‘ㄷ’이라는 철자 없이 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이메일 편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배명훈이 편애하는 그녀 은경 씨는 소설 여기저기에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스터에그(비밀 암호문)가 숨겨진 문서를 해독하는 일처럼 배명훈 코드는 흥미롭다. 감성과 멜로, 그리고 위트가 버무려진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일은 유쾌한 체험이다.   


  

배명훈은 선물이다. 그의 진귀하고 풍요한 우주적 상상력은 사유의 재고가 거덜 난 한반도 기지의 지구인들에게 투하된 지적 비상식량과 같다. 소설가 박민규가 “100년 후 한국문단은 작가 배명훈이 이 땅에 있었다는 사실에 뒤늦은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지만, 나는 100년을 앞당겨 그가 나의 시대에 있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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