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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태주 Jun 22. 2017

처음 시를 쓴 사람

바닷가 우체국에서 쓴다



그녀는 바쁘게 살고 있었다. 페북에서 만나 친구가 됐는데 나는 여러모로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밥도 얻어먹고 남편과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내가 도와줄 일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찾아왔다. 머뭇거리다가 내게 노트한 권을 내밀었다. 그녀가 가게 일을 하면서 틈틈이 쓴 시였다. 형편없는 시이지만 어렵게 용기를 냈으니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쓴 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점점 흐려져서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사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허리 한 번 펴기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고단한 몸을 추슬러 시 몇 줄을 고른다는 것이 얼마나 절박하고 숭고한 일인가에 대하여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볼 뿐이었다.

시에 대해서, 시를 쓴다는 일에 대해서, 시적인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서 그때처럼 온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는 시적인 어떤 특별한 무엇인가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시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또 초보자들은 시는 정서적 산물이라는 생각에 시 안에다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붓기도 한다. 시 짓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를 특별하게 대우하기 때문에 그렇다. 너무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는 남자들이 말을 더듬는 것처럼. 시는 천상의 무엇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지상에서 겪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의 것을 내가 보고 느낀 대로 새롭게 발견하는 일에 속한다. 감정을 쏟아 붓는 일이 아니라 그 감정을 멀찍이 거리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이 시의 일이다.

그녀의 집 마당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나는 그 우물이 당신 삶의 은유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깊은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여간해서는 마르지 않는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넘치는 일도 없다. 우물은 상황에 따라 수위를 조금 낮추거나 높일 뿐, 정갈한 물을 담아내는 우물의 본령을 꿋꿋이 유지한다. 참된 사람은 우물과 같다. 누가 그를 허황하게 치켜세우거나 비하하더라도 그의 자존의 높이는 변함이 없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건, 누군가 어떤 차별을 가하건 그가 가진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그는 오직 그의 원본이니까.

자신의 우물로 돌아간 그녀는 아직도 내게 다음 시를 보내오고 있지 않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알려 준 것일까? 나는 기다릴 뿐이다. 그녀가 더 깊게 우물을 파내려가고 있는 중일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녀가 보내올 우물의 시는 혹서의 날엔 한없이 청량하고, 엄동의 날엔 더없이 온화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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