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책 출간 소식
새 책을 엮었다. 사후의 명저, <그토록 붉은 사랑>이 나온 지 이 년 만의 일이다. 다시는 허튼 글로 나무를 베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열렬한 독자들의 민원을 이길 수가 없었다. 새 책의 제목은 <나의 인생 보고서>라고 붙였다. 사실 세 번째 책이 나온 걸 주위 지인들도 잘 모른다. 내가 일부러 알리지 않았고 한정판으로 99부만 찍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가까운 친구들이 알면 몹시 서운해 할 일이겠지만 판매용으로 출판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오늘의 내 삶이 있도록 생명을 준 분들과 내가 밥을 벌며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흔아홉 분에게 정성스럽게 책을 싸서 보냈다. 그 중 한 분은 돌아가신 어머니여서 어쩔 수 없이 새 책을 불태워 그 활자의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드렸다. 모든 한 분 한 분께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보살핌과 가르침으로 내가 사람으로 살아왔노라고, 여기까지 무탈하게 건너왔노라고 마음의 말을 담아 새기듯 썼다. 우묵한 흉부에 차오르는 것이 있어서 자꾸 지우다 쓰다 했다.
누군들 혼자만의 온전한 삶이 있겠는가. 나는 내 삶이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게 온 살과 뼈는 대지의 것이고 영혼은 봄날의 것이고 정신은 먼저 떠난 사람들의 것이고 업보는 나중에 올 사람들의 것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잠시 빌린 이 생의 욕심부릴 것 없는 삶을, 얇게 저민 나무판에 활자로 새겨 오늘까지의 인생경과보고서를 올려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슬픔이 끼어든다고 했던가. 나의 이런 아름다운 취지에도 불구하고 내 책을 증정받은 어떤 분이 이 책을 경매 사이트에 내놓은 모양이었다. 그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예기치 못한 불미한 일을 당하고 보니 나는 황당하고 혼란스러웠다. 고민 끝에 그 책을 내가 조용히 거둬 들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이 우습게 되어버렸다. 알음알음 경매 소문이 퍼졌는지 내 이름값을 하느라 그랬는지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는 이미 옥션가가 저만치 올라가 있었다. 내가 빨리 끝내려고 가격을 입력할 때마다 경매가가 계속 치솟아 나중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이 돼버렸다. 책 한 권 때문에 전세금을 뺄 수도 없잖은가.
여기까지가 어젯밤 내가 꾼 꿈의 전말이다. 오늘은 제주부터 돌풍이 불고 벼락이 치고 장맛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